형제를 사랑하라 - 3. 19~24
크리스천의 형제사랑
형제 사랑은 그 사람의 믿음에 대한 증거이며, 그 믿음의 가치와 진실함의 표현이긴 하지만, 그 사랑이 구원에 이르는 믿음의 근거일 수는 없다. 구원에 이르게 하는 그 믿음의 근거는 오직 예수그리스도이시며, 주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선물로 받은 생명의 씨앗인 성령에 의해 우리는 그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 즉 사랑은 믿는 자의 선한 양심에 의해서만 행해질 수 있다. 그러나 그 선한 양심에 의한 행동이 우리의 믿음과 그 믿음에 의하여 주어지는 온갖 은총의 근거는 될 수 없다. 사랑은 믿음을 가진 사람의 신앙과 삶 속에서 나타난 그 열매가 그 사람의 믿음의 진실 됨의 표현이며, 증거일 뿐이다. 하나님의 자녀 됨의 확신은 하나님의 언약에 따라 믿고 순종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총에 의존되어 있다. 그리고 믿는 자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하나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죄의식과 크리스천 선행
사도 요한이 말하는 요지는 무엇인가? 인간이 만일 죄의식을 가지고 있으면서 스스로 자신을 정죄하고 있다면, 그는 이미 그 양심에 의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자이다. 바울은 자신에 대해 말하기를 스스로 자책할 아무런 것을 깨달은 바가 없지만 그것으로 의롭다함을 입지는 못한다고 고백하고 있다(고전 4: 4). 인간은 자신의 의무에 대하여 아무리 충실하다할지라도 여러 가지 죄를 짓고 있을 수 있으며, 또한 알지 못하고 짓는 죄도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양심의 억눌림과 괴로움을 당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된다. 하나님은 인간이 갖고 있는 지적능력보다 뛰어난 전지하신 분이다. 따라서 인간의 양심이 마비되고 그들이 범하는 죄를 깨닫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죄를 슬퍼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결국 지옥으로 치닫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선한 일을 행하며 산다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이다(잠 16: 2).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은 선한 행실이 아닌 오직 믿음뿐이다(엡 3: 12).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얻게 되며,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릴 수 있다(롬 5: 1). 우리가 담대히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것은 나의 그 어떤 선행이나 공로가 아닌 십자가의 은혜임을 고백해야한다. 따라서 믿음으로 우리를 구속하신 은총을 입은 자로서 그의 계명인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하신 명령을 따라 이웃 사랑을 실천하면서 선을 베푸는 삶을 살아가가야만 한다(요 15: 7).
계명을 지키는 자로서 형제사랑
기도에 대한 요한의 증거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 기뻐하시는 것을 행하는 가운데 무엇을 구할 때에 그로부터 받게 될 것을 의미한다. 그의 계명을 지키는 않는 자가 기도할 때에 응답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의 기뻐하시는 것을 행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응답하실 것을 뜻한다. 그의 계명을 지켜 행한다는 것은 곧 선한 양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감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게 하신 은총을 인하여 성령 안에서 그분의 뜻을 좇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행할 그의 계명이란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것을 말한다. 둘째, 그가 우리에게 주신 새로운 계명으로서 서로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다는 것은 아버지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그를 믿는 다는 것은 우리의 지식과 경험으로 인정한 이후에 믿을만할 때에 믿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의 경험과 과학적으로 검증된 것만을 믿겠다고 말하는 인간중심적인 믿음도 아니다. 오직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던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명하신 것을 순종하여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분의 뜻이기 때문에 내가 용서할 수 없고 사랑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도저히 용서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는 가운데 그분의 뜻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감정이나 의지를 버리고 그분의 뜻에 복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그가 주안에서 거하고 주께서도 그 안에 거하신다는 것은 곧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이 그 신자 안에 거하신다는 말과 같다. 성령이 그 안에 내주하심으로 그와 더불어 먹고 마시며, 하나님나라에 갈 때까지 끝까지 견인하시는 은총을 입게 된 것을 의미한다. 요한은 요 6: 29에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라고 증거 하고 있다. 하나님의 일이란 곧 그 아들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이다. 또한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고 증거하고 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것을 말하며 그들을 세상 마지막 때에 다시 살리시는 것이다. 요한은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따라 그의 명령에 복종하는 삶이 곧 하나님의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임을 증거하고 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의 계명을 지켜 행한다는 말이며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곧 아버지의 뜻을 좇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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