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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안에서 소망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 요일 3: 1~3

말씀하시는 성령

by James S. S. Jung 2009. 6. 27.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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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안에서 소망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 요일 3: 1~3

 

3: 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다”는 말은 우리의 신분을 상기시키고 있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었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뜻한다. 전에는 우리가 멸망의 자식이었고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자였지만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양자로서 하나님나라를 상속 받게 될 거룩한 자녀임을 의미한다. 바울이 이러한 신자들에게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롬 12: 1)”고 강하게 권고하고 있다.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이라는 요한의 표현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조차도 알지 못한다. 세상은 하나님의 법에 따라 살려는 신자들을 괴롭히고 위협할 것이다. 왜냐하면 신자들이 알고 있는 선이나 거룩함을 추구하기 보다는 세상 어두움을 좇아 사는 자들에게는 우리의 모습이 그들에게 좋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노아홍수 역시 인간의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보여 주신 사건이다. 인간의 죄의 결과가 얼마나 비참한 최후를 맡게 되는 지를 분명하게 보여준 심판이었다. 노아가 방주를 지으면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그 방주를 지으라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 수는 없었지만 그 하나님의 뜻을 존중히 여기지 하루하루 순종하며 방주를 만들 때에 세상 사람들은 그를 비웃었다.

 

3: 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사도 요한 역시 “우리가 그와 같은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이라고 했던 것은 바울의 생각과 같다. 바울은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니라고 말한다. 보이지 않는 소망을 바란다면 인내하며 기다려야한다고 말했다. 즉 보이는 소망이란 영혼은 그리스도 안에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영생을 얻었지만 아직 아담의 몸을 입고 있기 때문에 세상에서 일생이라는 삶을 사는 동안에는 진정한 소망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의 부활의 몸을 입을 때에는 아담의 범죄 하기 이전의 상태 즉 그리스도께서 둘째 아담으로 오셔서 보여준 하나님의 형상대로 온전히 변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골 3: 3~4에서는 “너희 생명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고 증거하고 있다. 또한 고전 13: 12에서는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 증거하고 있다. 모세도 하나님의 형상을 볼 수 없었다. 그는 하나님의 등만 보았을 뿐이었다(출 33: 23). 하지만, 장차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는 우리가 본래 잃어버렸던 그 영광을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얻게 될 것이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지만, 인간은 그것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둘째 아담으로 오셔서 하나님을 아는 충만한 지식과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의 거룩하시고 선하신 뜻에 따라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서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참 인간의 모습을 우리 가운데 나타내신 분이다.

 

3: 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이제 우리는 주를 향하여 부활의 소망, 곧 완전한 하나님의 형상, 둘째 아담으로 오셨던 그리스도의 형상을 우리도 동일하게 입게 될 것이다. 이러한 소망을 가진 자라면, 세상에 있는 동안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다윗도 부도덕한 죄를 지었지만 나단 선지자의 충고를 듣고 회개했던 것을 기억한다(시 51편). 야고보 사도 역시 선을 행할 줄 알면서도 행치 않는 것이 죄라고 하면서(약 4: 17) 하나님 앞에 깨끗한 삶을 권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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