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실천이 요구되는 사귐(2: 3~11)
a. 계명을 지켜 행하는 삶(2: 3~6)
2: 3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곧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다(요 14: 15; 15: 10). 그리스도께서 새 계명을 우리에게 주셨지만 그 계명은 전에 없었던 새로운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옛 계명 아래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성취된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거하도록 하시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십계명(출 20: 1~17)을 문자적으로 준수하는 것을 초월한 하나님의 사랑을 자신의 몸으로 행하는데 까지 나아가는 사랑의 실천을 의미한다.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그가 행하신 일이 곧 인간의 죄를 위한 것이며, 모든 인간은 스스로 그 죄를 사함 받을 수 있는 길이 전혀 없는 가운데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으로 인간의 죄를 사함 받은 사실을 안다는 것을 뜻한다. 즉 이러한 은혜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사실을 아는 것을 의미한다. 믿음의 확신은 그리스도의 은혜에 근거한다. 또한 신자의 경건함과 거룩한 삶은 하나님께 대한 위선된 모습과 어두운 가운데 있는 지식으로부터 믿음의 진실 됨을 구별할 수 있게 한다.
2: 4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만일 그리스도를 안다고 한다면 그는 반드시 그의 계명을 실천하는 자라야 한다. 하지만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라면 그는 그리스도를 모르는 자이며, 안다는 것은 거짓말하는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 안다는 것은 그가 진리를 안다는 것과 일치한다. 따라서 그가 계명을 지키지 않음으로 그는 스스로 그 진리를 알지 못한다는 증거가 된다. 그렇다면 그 진리란 무엇인가?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하셨다. 진리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을 입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의미한다. 이 진리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죄와 사망의 법으로부터 자유와 해방을 주셨음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죄와 사망의 법아래 종노릇하였지만,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 종이 되게 하셨으므로 반드시 하나님의 법 곧 그리스도의 법을 지켜야하는 종이 되었음을 뜻한다.
2: 5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모세는 신 10: 12에서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모든 도를 행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묻고 있다. 또한 신 30: 19~20에서는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그에게 부종(附從)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오 네 장수시니~”라고 증거하고 있다.
따라서 말씀을 지켜 행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음을 의미한다. 신자가 온전케 되는 길은 말씀을 지켜 행할 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이 그 안에 완성되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께서도 서로 사랑할 것을 당부하셨다(요 13: 34). 이 사랑의 실천을 명하신 것이 곧 새 계명이다. 그러므로 신자가 서로 사랑함으로서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을 증명하게 된다.
2: 6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이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그리스도께서는 선하심과 거룩하심과 의로우심을 나타내셨다. 그의 선하심이란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심을 의미한다. 이 어두움은 곧 죄를 의미한다. 하나님은 본래 죄가 없으신 분이다. 그의 거룩하심이란 부패와 부정으로 인하여 더러워진 세상과 구별되는 깨끗하고 순결하심을 의미한다. 그의 의로움이란 자기희생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신 것과 함께 그의 희생으로 믿는 자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하신 것을 말한다.
b. 새 계명의 의미(2: 7~8)
2: 7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의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요한은 새 계명으로 주신 사랑의 계명을 옛 계명이라고 했다. 구약의 옛 계명은 빚을 탕감해 주는 규례(신 15: 1~11), 종을 해방시켜 주는 규례(신 15: 12~18), 고아나 과부, 나그네를 보호하기 위한 규례(신 24: 19~22) 등을 통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함께 인간에 대한 사랑을 일깨워주고 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온전한 실천은 유일하게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셨다.
2: 8 “내가 다시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저에게서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두움이 지나가고 참 빛이 벌써 비췸이니라.”
요한이 말하고 있는 새 계명은 전혀 새로운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옛날부터 전해오던 옛 계명임을 뜻한다(7절). 그러나 이 계명을 다시 8절에서는 새 계명이라고 말한다. 옛 계명은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부터 있었던 것이며 그 계명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리스도께서 그 계명 아래 죽고다시 부활하심으로 인하여 이제는 그 계명 아래에 있었던 신자들이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계명으로서 그 역할이 변한 것임을 의미한다. 옛 계명은 우리를 정죄하던 계명이었지만,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주어진 새 계명은 신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신앙과 삶의 좌표로서 주어진 새롭게 주어진 계명이다. 옛 계명은 신자를 정죄하던 계명이라면 새 계명은 신자들의 신앙과 삶의 좌표로서 새롭게 주어진 법이 된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계명은 이제 결코 정죄하지 않는 법이 되었다(롬 8: 1~2). 우리가 어두움에 있을 때에는 그 옛 계명이 우리를 정죄했지만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빛 가운데 거하는 신자들에게는 새로운 계명이 되었다. 하나님나라로 나아가는 자들에게 그 길을 비춰주는 새로운 계명이 되었다.
c. 형제를 사랑하는 삶(2: 9~11)
2: 9 “빛 가운데 있다하며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요”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그 양심에 하나님의 법이 없는 자이다. 그는 빛 가운데 즉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가 아니라 어두움 즉 세상과 그 세상에 있는 것들 안에 거하는 자이다. 따라서 그는 죄 가운데 있음을 뜻한다. 바울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할지라도 상대방이 실족할 우려가 있을 때에는 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고전 8: 1~13).
바울은 자기 이웃을 사랑하는 자란 율법을 다 이루었다고 했다(롬 13: 8). 예수께서도 말씀하기를 율법은 의(義)와 인(仁)과 믿음(信仰)이라고 했다(마 13: 23).
2: 10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자신의 신앙과 삶 가운데 형제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면 그는 마음에 거리낌이 없는 자이다. 하지만 자기 양심에 거리낌이 없다할지라도 형제가 실족하여 넘어질 우려가 있는 일은 행하지 않는 것도 형제를 사랑하는 일이다.
2: 11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또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
눈에 보이는 형제를 미워하는 자가 어두운 가운데 있다는 것은 빛 가운데 행하지 않는 자라는 뜻이며, 또한 그 어두운 가운데 행하기 때문에 그가 가야할 곳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 그것은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했다는 것은 곧 그 안에 있는 죄와 그 죄로 인한 인간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그로 하여금 형제를 사랑하는 것보다 세상에 있는 것을 좇아 행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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