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본문 강해
Ⅱ-1. 서론: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과 기록목적(1: 1~4)
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이신 그리스도(1: 1)
2. 영원한 생명으로 오신 그리스도(1: 2)
3. 보고 들은 바를 전하는 이유로서 사귐(1: 3)
4. 기쁨이 충만케 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록(1: 4)
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이신 그리스도(1: 1)
1: 1상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요한은 그리스도를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으로 표현하고 있다(요 1: 1). 이 때 태초는 세상 창조시를 의미한다. 곧 그리스도는 창조당시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음을 의미한다. 또한 하나님은 인간세계의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분이다. 인간의 생명의 근원이신 그리스도께서 말씀으로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것이며, 그 말씀이신 그리스도가 곧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다. 하나님은 인간세계를 창조하신 분으로서 인간세계의 시간과 장소적인 제한을 받지 않는 분으로서 그러한 제한으로부터 초월해 계시는 분이다. 따라서 1: 1상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나타내는 말이다.
‘태초부터 있는’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때 태초는 창조시를 의미하지만 그 안에서 태초에 세상을 창조하시기 이전으로 우리의 사고를 이끈다. 이 태초는 세상을 창조하시기 이전의 세계를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만드는 표현이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창조하신 세상은 시간이라는 것과 함께 장소적인 제한을 받는 곳이다. 즉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시간적 개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세계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세계는 영원한 현재이다. 그곳에는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존재하지 않는 영원한 현재만이 존재하는 세계이다.
‘생명에 관하여는’에서 생명은 ‘생명을 주는’이라는 형용사를 사용하고 있다. 요 1: 4에서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했다. 요일 1: 1에 사용된 ‘ζωῆς’는 명사 속격 여성 단수로서 ‘생명의’란 뜻이다. 따라서 사람들의 빛으로 오신 이 생명의 말씀이신 그리스도는 모든 피조물들에게 생명을 주셨던 분이며, 이제는 아담의 죄로 인하여 죽어 멸망 받게 될 일생이라는 유한한 생명을 지닌 우리의 생명을 물과 성령으로 회복시켜 주시기 위하여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그리스도이시다.
* 영원한 현재로서 영존하는 하나님의 세계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인간의 세계
창 1: 1의 태초는 세상이 창조된 시점의 태초를 의미한다. 하지만 요 1: 1과 요일 1: 1의 태초는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의 태초를 의미한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원한 현재로서 영존하는 하나님의 세계와 하나님에 의해 무(無)에서 창조된 인간의 세계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만 가능하다.
1: 1하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요한은 그가 표현하고 있는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이신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다. 즉 그는 그로부터 들었고 그를 눈으로 주목하여 보았고 자기의 손으로 만졌던 분임을 증거하고 있다.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 3년 동안 그리스도와 함께 했던 제자였다. 따라서 요한이 쓰고 있는 이 서신은 그리스도로부터 들었고 보았고 손으로 만졌던 분으로부터 받아 기록한 말씀임을 밝히고 있다. 요한이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보았고 그에게 들었고 주목하여 손으로 만졌다는 것은 곧 역사적으로 경험한 사건이었고 동시에 요한은 그로부터 철저하게 배웠다는 사실을 뜻하고 있다. 이것은 또한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확실한 근거이다.
2. 영원한 생명으로 오신 그리스도(1: 2)
1: 2상 “이 생명이 나타나신바 된지라”
나타나셨다는 말은 곧 말씀으로 계시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자신을 나타내신 것을 말한다. 이러한 사실을 친히 증거하고 계시는 예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 14: 6)”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하느냐?~”라고 반문하셨다(요 14: 9~14). 이 생명은 곧 아들이신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었다. 이 생명은 아담 안에서 잃어버린 자들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서 그 생명을 다시 얻게 하신 것이다. 이 생명이신 그리스도는 사람들에게 비취는 빛으로 세상에 오셨지만, 세상은 그 빛을 깨닫지 못했다(요 1: 4~13).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인간은 이 빛을 거부하고 여전히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좇고 있기 때문이다(요일 2: 16). 오늘날도 이 생명의 빛은 여전히 그리스도 안에서 세워진 교회를 통하여 성령이 말씀하고 계신다.
1: 2중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 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 영원한 생명이신 그리스도는 자신을 제자들에게 나타내셨고 제자들은 그를 보았고 그의 말씀을 들었으며, 그가 명하신대로 이 영원한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세상에 전한다. 이 성육신 사건은 구약에서도 증거 된 사건이다(창 3: 15; 사 7: 14; 미 5: 2).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계시하셨다. 하나님은 언약을 이루시는 분이다. 인간이 그 언약을 잊을지라도 하나님은 반드시 그 언약을 이루신다(출 2: 23~25; 마 1: 22; 막 14: 49). 제자들 가운데 요한은 지극히 사랑하심을 입은 제자 중 하나였다. 그는 한 평생 그리스도의 사랑을 입은 제자로서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일 4: 10~11).”라고 외치고 있다.
1: 2하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자니라.”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되신 그리스도는 태초뿐만 아니라 영원 전부터 아버지와 함께 계셨던 분이다. 아니 태초 이전부터 즉 영원한 현재인 하나님의 세계에 생명의 근원으로 계셨던 분이다. 따라서 성경에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자신을 계시하신다. 이러한 근거에 의해 우리는 삼위이신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이다. 요한은 복음에 대한 위엄을 약화시키는 잘못된 견해를 수정하기 위하여 역설적인 표현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신바 된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다. 즉 그리스도께서 생명으로 우리 가운데 나타내신 것은 2000년 전의 일이지만 실제로는 그리스도께 하나님과 항상 계셨던 분이었다.
3. 보고 들은 바를 전하는 것으로서의 사귐(1: 3)
1: 3상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 전함은”
여기에서 우리란 요한을 비롯한 다른 제자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들이 보고 들었던 것을 전하고 있다. 그들의 생각이나 그들의 이야기가 아닌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이 계시하신 말씀을 보고 듣고 전하고 있다. 때문에 요한과 그와 함께 했던 제자들이 전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가 함께 주어진다. 또한 여기에서 “너희에게 전함은” 어떤 목적이 암시되었다. 전하고자 하는 어떤 목적이 발견되는 표현이다.
1: 3하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함이라”
요한이 그리스도를 전하는 목적은 곧 그들과 사귐이 있게 하려했던 것이고 이 사귐이란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후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었던 아담의 후손들 가운데 택하신 자들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와 사귐이 있게 하기 위함이다.
여기에서 사귐이란 인간의 최고의 선(善)이신 그의 아들 그리스도와 연합을 의미한다.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연합하는 일이다(요 17: 15~26).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신뢰와 의지는 시 16: 5~6에서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잔의 소득’이시라는 그의 고백에서 찾을 수 있다. 다윗은 자신에게 주어진 기업이 실로 아름답다고 했다. 바울은 빌 3: 8에서 그리스도를 소유하는 것 이외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했다.
4. 기쁨이 충만케 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록(1: 4)
1: 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하이로다.”
요한은 우리로 하여금 기쁨이 충만케 하려고 그가 기록하고 있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그것은 곧 그리스도 안에서 물과 성령으로 주신 영원한 생명이다. 요한은 아담으로부터 즉 육신의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생명이 아닌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영원한 생명을 증거하고 있다.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생명은 일생이라는 기간만 살 수 있는 생명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얻게 된 생명은 물과 성령으로 얻게 된 영원한 생명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이 생명은 세상에 있는 동안은 물론 일생을 마치고 세상을 떠난 후에도 하나님나라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생명이다(요 3: 15).
요한은 이 영원한 생명을 인하여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교제를 나눔으로서 그 기쁨이 충만했다. 이 서신을 읽고 있는 우리들도 그들이 누리는 기쁨을 함께 누릴 수 있기를 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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