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2. 본론
1. 그리스도와 사귐의 조건/근거(1: 5~2: 2)
2. 실천이 요구되는 사귐(2: 3~11)
3. 사귐의 의미와 본질(2: 12~29)
4. 그리스도 안에서 사귐이 있는 자의 삶(3: 1~4: 21)
5.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귐의 근거로서 아들 안에 있는 믿음(5: 1~12)
1. 그리스도와 사귐의 조건/근거(1: 5~2:2)
a. 빛 가운데 행하는 삶(1: 5~7)
1: 5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요한이 전하는 소식은 곧 빛으로 오신 하나님이다.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은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분이 아니라는 뜻이며 또한 그에게는 죄가 없으시다는 의미이다. 빛은 하나님나라에서 세상에 오신 즉 죄 없으신 의로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뜻한다. 또한 그분은 세상 사람들처럼 죄도 없으신 분이다.
바울은 딛 2: 11~12에서 신자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에 의해 양육하시는 은혜를 입은 자는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오직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살아야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요한은 하나님이 빛이시므로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다고 증거 한다. 칼빈은 이러한 하나님에 대해 말하기를 ‘광명으로 만물을 비추시는 것은 곧 그가 밝고 순결하시며, 신실하심을 의미한다고 했다.’ 또한 ‘하나님은 악이나 변절이 없으시고 허물도 흠도 없으시며 위선이나 부정, 거짓이 결코 없는 분이라고 했다.’
1: 6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여기에서 사귐이란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연합하게 하신 것을 말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사귐이 있다는 말은 동시에 아버지 하나님과도 사귐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사귐이란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된 존재가 되었음을 의미하며, 그리스도 몸 안에서 각 지체가 되었음을 뜻한다. 그리스도와 신자가 한 몸이 되었다는 것은 성령이 거하시는 전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사귐이 있다하고 어두움 가운데 행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칼빈이 말하기를 요한이 ‘거짓말하고’라는 말을 덧붙인 것은 그의 특이한 화법(話法)이라고 했다. 이것은 진실하게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진실과 정의를 갖지 못했다는 말과 같다고 했다. 사람의 생명을 뜻하는 빛은 곧 어두움을 사랑하는 자를 정죄하는 심판(요 3: 19)을 뜻하며, 그리스도를 좇는 자에게는 생명을 주는 구원을 상징하고 있다(요 3: 17). 그러나 어두운 가운데 행하는 것은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일이므로 아버지께 갈 수 없게 된다(요 14: 6). 그리스도 안에 산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신비적인 연합을 의미하는 것은 물론 그의 계명을 지켜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요 14: 15; 15: 10, 12; 고전 10: 16~17).
1: 7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여기에서 행함이란 성도 간의 교제를 말한다. 이 교제는 빛 곧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성도 간의 교제로서 죄 사함을 얻은 자들의 순결한 생활을 의미한다. 이 순결성의 근거는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죄 사함이다. 이 죄 사함은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총으로 주어진 것이다. 예수의 피 외에는 다른 아무 것도 우리를 죄로부터 깨끗하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히 9: 13~14).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다는 구약의 증거도 있다(레 17:11).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 간의 교제를 통하여 날마다 빛 가운데 행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히 3: 13~14).
사귐이란 신자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과 그 성령의 뜻에 순종하는 신자의 삶을 말한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함께 모든 불의가 소멸되어지는 것을 말한다. 반면에 하나님을 떠나면 그들은 부정하고 어두움 속에서 생활하게 된다. 또한 사귐이란 하나님을 경외함을 의미한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는 어두움 가운데 행하는 자이다. 어두움 가운데 행하는 자들은 전심으로 하나님께 헌신될 수 없다. 신자의 일생동안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분의 뜻에 따라 헌신하는 삶이 곧 하나님과 신자의 사귐이 되어야한다.
하나님과 신자 간의 진정한 사귐은 신자의 의롭지 못한 삶으로부터 자신이 떠나는 것이며 성령 안에서 거룩한 삶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값없이 주신 하나님의 용서가 단 한번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날마다 신자의 삶 가운데 지속적으로 입게 되는 은총을 뜻한다. 요한이 말하는 ‘모든 죄에서’란 우리가 매일같이 범죄 함을 인하여 날마다 그 지은 죄에 대한 용서를 하나님께 구하고 있는 신자의 삶을 의미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의 은총을 입은 자에게는 이제 그 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신자의 삶을 방해할 수 없게 되었다.
b. 죄를 자백하는 삶(1: 8~2: 2)
1: 8 “우리가 만일 죄없다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요한은 죄 사함의 은총이 반드시 필요한 인간의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인간의 죄는 타락한 인간의 성품과 함께 인간의 부패성을 나타내고 있다. 바울 역시 로마서에서 모든 인간은 다 죄인임을 입증하고 있다. 유대인의 죄와 이방인의 죄를 열거하면서 모든 인간의 죄 아래 있음을 증거하고 있다(롬 1: 18; 3: 9; 6: 17). 심지어 그리스도를 믿는 자 역시 죄인이며, 다만 믿는 자들에게 약속된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 그리스도의 피로써(요일 1: 7) 그 죄를 용서받은 자에 불과하다(엡 4: 32).
1: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미쁘시다는 뜻은 약속을 반드시 지키신다는 의미이다. 죄인을 용서하시고 구원하실 것을 약속하신 미쁘신 분이심을 뜻한다(고전 1: 9; 히 10; 23). 그분은 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에 또한 죄를 미워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 죄를 사함 받게 하시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신 분이다(롬 3: 21~25). 그러나 자기 죄를 회개하고 자백하는 자들은 그 죄를 사함 받게 된다(신 30: 1~4). 교회 역시 무분별하게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권고와 책망과 함께 교회의 거룩성을 유지하고 보존해야 한다(눅 15: 11~24).
우리가 죄를 자백한다는 것은 그 죄를 회개하는 것과 함께 새로운 삶이 요구된다. 물론 하나님은 값없이 우리 죄를 사하셨지만 그 은혜가 죄의 유혹으로 악(惡)이용되어지는 수단이 될 수는 없다. 우리를 깨끗케 하신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희생제물을 통하여 우리 죄를 용서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새롭게 하신다는 뜻이다. 이것은 곧 신자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우리의 일생동안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의롭게 하신 자녀들을 또한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1: 10 “만일 우리가 범죄 하지 아니하였다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 하니라.”
“죄 없다(8)”는 의미는 원죄를 의미하는 반면, “범죄 하지 아니하였다”는 아담으로부터 유전된 죄의 성향을 인정하면서 자신의 범죄 사실에 대해서는 부인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이 자신의 죄를 부인했다는 말은 곧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심으로써 죄인을 구속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범죄 사실을 부인한 것을 뜻한다. 결국 이것은 십자가 사건을 무효화 시킨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또한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든 셈이다. 자신의 죄를 부인하는 자는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를 입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 일을 행하신 하나님도 그에게는 거짓을 행한 결과가 된다. 그리고 그가 모르고 인정하지 않을 뿐이지 그리스도는 인류의 죄를 대속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를 믿는 자들은 누구든지 그의 죄를 사함 받고 잃어버린 하나님나라를 상속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범죄 한 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그의 말씀이 그 속에 없는 자로서 그에게는 생명이 없다는 의미와 같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자로서 그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없는 자이다.
2: 1상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여 함이라”
요한이 기록한 목적은 곧 죄를 범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그 죄란 곧 적그리스도의 출현과 함께 그들의 유혹에 대처할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신자의 죄를 언급하는 것은 일반적인 모든 죄를 의미하기 보다는 적그리스도의 출현과 그들의 유혹에 대한 것을 염두 해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요일 2: 22~26).
적그리스도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방안은 곧 그리스도의 계명을 실천하는 일이다. 그리스도의 계명을 실천하는 것은 곧 서로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요일 2: 22~23). 서로 사랑하다는 것은 곧 계명을 지키는 것을 뜻한다(5: 1~3; 벧후 3: 17). 성도가 죄를 범하는 것 중에 가장 큰 죄 역시 적그리스도의 유혹으로 인하여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다툼과 분열을 일으키는 일이다. 요한이 여기에서 말하는 죄란 세상의 윤리도덕적인 죄보다도 교회의 다툼과 분열로 인하여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해치는 죄를 의미하고 있다.
우리의 육체는 항상 방종하려는 경향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몸을 입고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총을 통하여 의(義)와 거룩함을 입을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잊어서는 안 된다.
2: 1하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여기에서 ‘대언자’란 옹호자, 위로자로서 ‘보혜사(요 14: 16; 15: 26; 16: 7)’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그리스도께서 자신 안에 있는 신자의 죄를 옹호하여 하나님 앞에서 변호해 주신다는 의미이다. 즉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우리 안에 내주하시며, 신자의 마음과 생각에 기록하시며, 그들을 인도하시며, 변호하시며, 책망하신다는 것을 뜻한다(히 10: 16~18). 예수께서는 그 안에 있는 신자들로 하여금 긍휼하심과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하신다(히 4: 16).
2: 2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그리스도께서 화목제물이 되신 것은 하나님과 단절된 관계를 회복하고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기 위해 속죄하는 제물을 뜻한다(롬 3: 25; 고후 5: 18~19). 구약시대에는 그리스도의 속죄를 상징하는 짐승의 희생으로 속죄함을 입었지만, 이제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영원한 한 제사를 드림으로 온전한 속죄를 이루셨다(히 9: 11~14).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 되신 예수께서는 자기를 희생하심으로서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며, 이러한 순종으로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의 고통과 수난을 기쁨으로 견디어 내셨다. 그리고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도 역시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하셨다(마 16: 24).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과 욕망을 버리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은 곧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요일 2: 16). 즉 우리가 사랑하지 않아야 될 것은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뜻한다. 그리스도께서 화목제물이 되신 것은 요한과 그의 제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온 인류의 죄를 위한 것이며, 특히 온 인류 가운데 택하신 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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