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구원 - 요엘 2. 32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 시온과 예루살렘에 피할 자, 남은 자 중에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들은 곧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자들을 의미합니다. 과연 오늘날 한국교회 안에서 이러한 모습을 발견한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일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면서 동시에 너무 편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어리석고 게으른 크리스천이라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할 것입니다. 과연 이러한 평화와 안정을 주신 목적이 무엇일까? 자유롭게 하시면서 이들을 통하여 전 세계의 복음화를 위한 계획을 이루고 계신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합니다. 북한, 중동 등에서 보이지 않는 교회들 그들의 신앙과 삶은 곧 목숨과 신분의 위협을 감수한 신앙생활입니다.
1.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
하나님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을 구원하십니다. 오늘날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을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각 시대마다 택하신 종들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오늘날도 교회를 통하여 성령께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교회는 구원의 하나님을 선포합니다. 그 구원이 하나님이 우리가운데 행하신 일이 무엇인지를 선포합니다. 그 선포된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 세례를 받게 하십니다. 그 세례를 받는 자들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실 것입니다. 그 성령은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고백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임을 인치시는 기름부음을 부어주십니다.
오늘날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을 지닌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자녀의 특권을 가지고 있지만 그 특권을 누리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하지 않은 것이며 구하였을지라도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구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오늘날 그리스도 안에서 구하는 모든 것은 다 응답하셨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단지 우리에게 응답되지 않는 기도가 있다면 아직은 우리 자신을 위하여 허락하지 않으시는 것이며 또한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구한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자신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좋은 것으로 예비하시며 주시는 분이심을 믿고 그를 의지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2. 시온과 예루살렘에 피할 자
종말시에는 신자의 믿음을 찾아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현재에도 세속화의 진행이 매우 빠르게 진행됩니다. 한 가지 진리 보다는 서로 상대주의와 다원주의에 의해 혼합되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분별하지 못하고 있는 위험스러운 일은 종교다원화 현상은 하나님과 다른 종교의 우상과 동등한 선상에 놓고자하는 일들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은 타협이나 논의의 관계가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인간이 그것을 수용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닙니다. 단지 순종하도록 명령하신 것이지 그것을 행하는데 순종하기 어렵다고 하면서 그 명령을 하나님이 인간에게 행하도록 제안하시는 것으로 끌어 내리려는 의도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것이 종교다원화 현상에서 나타나고 있는 큰 교회의 위기적인 요소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종교간의 대화가 위험한 것은 하나님의 보좌에 인간이 앉아 다른 종교와의 상대적 입장에서 변론하려는 태도를 지니게 됨으로써 하나님의 보좌에 인간이나 다른 피조물이 앉게 되는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시온과 예루살렘, 곧 오늘날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을 지키며,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을 고대하며 기다리는 신자들이 있다는 것은 말세에 사는 우리에게 큰 위로가 아닐 수 없습니다.
3.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게 될 남은 자들
세상에서 하나님이 남기신 자들이 없다면, 종말시에는 구원 받을 자들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종말시에 사는 크리스천들에게 위로가 되는 것은 우리 곧 신자의 의지로 남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남기신 자들이 있다는데 있습니다. 인간의 연약함은 갈대와 같이 불안전한 것입니다. 그 믿음 역시 겨자씨보다 작고 가벼운 어떤 것일지라도 하나님은 성령 안에서 우리를 승리하게 하실 것입니다. 끝까지 믿음을 지킬 수 있도록 피할 길을 주시며, 우리를 인도하여 가실 것입니다. 우리가 무슨 말을 하려고 염려하지 않아도 그 때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말을 주실 것입니다. 만일 우리의 힘으로 그 믿음을 지킨다면 우리는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들을 견인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뜻에 이끌려 가는 것이지 내가 그 성령의 뜻을 붙들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이미 생명이 그 안에 있듯이 성령이 그 신자의 영과 하나가 되어 그 영을 주장하는 주체가 되실 것입니다.
과연 오늘날 혼합되어지고 여러 가지 다원화를 주장하는 시대에 살면서 한 가지 신앙과 섬김의 대상만을 바라보고 사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하지 않고 내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나를 이끌고 가신다면 그것은 새로운 희망이며 우리에게 위로 평안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께서 하신다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나라에 입성할 때까지 아니 영원토록 우리의 영과 하나가 되실 것입니다. 이 신비스러운 실체는 우리가 천국에 입성한 이후에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희미하게 보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육은 아담의 몸이지만 그 속에 있는 영은 그리스도 안에서 있는 거듭난 생명이며 이미 영생을 시작한 생명입니다. 그러나 그 생명의 실체는 아직 아담의 몸에 가리어져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신 후 우리가 입게 될 그 부활의 몸을 입는 순간 우리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듯이 그 모습을 확연히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크리스천의 소망입니다.
| 회복 된 이스라엘 - 아모스 9. 11~15 (0) | 2009.05.17 |
|---|---|
| 요나의 손상된 자아와 그의 분노 - 요나 4. 1~11 (0) | 2009.05.17 |
| 시 64.1~10 - 의인의 간구 (0) | 2009.05.09 |
| 시 143.1~12 -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 (0) | 2009.05.09 |
| 시 115:1~18 - 여호와를 경외하며 의지하라 (0) | 2009.05.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