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의 손상된 자아와 그의 분노 - 요나 4. 1~11
하나님은 언제나 인간이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그 손상된 자아를 책망하시기 보다도 어떤 환경을 통하여 이해하고 자발적으로 순종하기까지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오늘도 요나의 손상된 자아가 어떤 죄를 범하고 있으며 그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발견하고자 합니다. 그 죄는 또한 우리 속에도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과연 그 손상된 자아가 저지르는 죄가 무엇인지를 살피면서 우리도 그 손상된 자아를 어떻게 처리해야 지를 함께 그 방법을 찾고자합니다.
1. 버려야할 육신의 자아
신자들에게는 육신의 자아가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이 자아는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고 책임 있는 행동을 하며 자신의 위치에서 타인을 의존하지 않고 자신에게 맡겨진 일들을 잘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됩니다. 또한 이 자아는 한 개인의 인격과 삶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으로서 자신의 건강과 함께 자신에게 부과된 과업을 수행하는 능력으로 작용합니다.
하지만 이 자아가 손상을 입게 될 때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인격적인 결합을 나타냅니다. 어떤 균형을 잃어버리고 우울증이라든지 자신을 학대하기까지 합니다. 이러한 일들은 개인적인 건강을 유지하지 못하고 질병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더 나아가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사회적으로 어떤 규범을 어기고 일탈행위를 하게 됨으로서 타인에게도 해를 끼치는 사회적인 문제아가 될 수도 있습니다.
2. 자아의 균형을 잃은 요나의 모습
요나의 자아는 이스라엘이라는 선민의식이었습니다. 니느웨로 가서 복음전하도록 명령을 받았지만 자신의 의도대로 행동하는 요나를 발견합니다. 요나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손상된 자아에 의해 하나님의 명을 거역하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던 일입니다. 하나님은 그 요나의 손상된 자아를 직접적인 방법으로 추궁하지는 않으셨지만 그는 풍랑을 일으키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자신 때문에 배가 풍랑을 만나게 된 것을 시인했으며, 결국 제비를 뽑을 때에도 요나가 뽑히게 되었고 바다에 던져지게 됩니다. 그 후 그는 큰 물고기 배속에서 3일을 지내다가 다시 니느웨로 향하는 길목에 토해지게 됩니다. 물고기 배속에서 지내던 3일 동안 철저히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만 아직도 손상된 그의 자아는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지 않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가 니느웨 성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지만 그의 속마음까지는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저들에게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이 니느웨성을 멸망하리라는 말씀대로 그들은 멸망 받게 되는 것이 마땅한 것처럼 마음먹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생각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들은 자기들이 섬기지 않았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셨지만 그들은 왕의 명을 따라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베옷을 입고 금식을 선포하며 통곡하기 시작했으며 하나님은 그들의 모습을 보시고 그들을 니느웨성을 멸망시키지 않으셨습니다.
반면에 요나는 니느웨가 재앙을 당하는 것을 보려고 다시스로 향하던 자신을 용서하신 하나님을 경험하고서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 내가 알았나이다.’라고 고백하면서 ‘심히 싫어하고 노하여’라고 표현 되었듯이 자기가 니느웨에 복음을 전하고 싶지 않았던 것처럼 이들은 분명히 재앙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항변에 가까운 태도였습니다. 자기는 내키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하루 길을 걸으며 하나님이 이 성에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는 말씀을 선포했던 자신의 순종이 헛수가 될 것임을 확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내 말이 맞을 것이라는 논의적인 자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자기의 의견을 내어 놓는 교만한 모습을 나타낸 것입니다.
3. 박넝쿨을 통하여 그의 그릇된 자아를 추궁하심
오늘날도 수많은 신자들 가운데 요나와 같은 성향을 나타낼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의 의견을 내 세우며 하나님과 논의하려는 태도를 나타냅니다. 자신의 생각과 의지대로 되어 질 것을 기대하고 자신의 의견을 하나님이 수렵하실 것을 요구하는 어리석은 인생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계시된 말씀대로 순종해야할 죄인의 위치 있다는 것을 망각하는 이들을 보면서 자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요나는 니느웨성 동편에 앉아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그늘에 앉아 성읍이 어떻게 되는 것을 보려고 대기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은 박넝쿨을 자라게 하셨고 요나의 머리위에서 그늘에 되게 하셔서 요나는 그 박넝쿨을 크게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벌레를 준비하셔서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씹게 하심으로 곧 시들고 말았습니다. 해가 뜨자 뜨거운 동풍을 준비하셨고 해가 요나의 머리를 쬐게 되자 그는 혼곤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기도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낫다고 호소했습니다.
A: 하나님은 요나에게 물으셨습니다. "이 박넝쿨을 인하여 화를 내는 것이 어찌 합당한 행동이냐?"
B: 요나도 그에 답을 했습니다. “내어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합당합니다.”
A: 하나님은 다시 요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수고도 아니하고 배양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넝쿨도 네가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이만 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하지 아니하느냐?”라고 말씀하시면서 요나서는 끝을 맺고 있습니다.
이 요나서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오늘도 요나처럼 자신의 손상된 자아에 의한 욕구를 채우려고 하나님의 뜻을 경시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요나의 손상된 자아와 같은 자신의 육체의 소욕을 쳐서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켜야 할 것입니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유혹에 넘어가 범죄 했던 아담처럼 오늘날도 하나님처럼 되고자하는 욕구가 강합니다. 아니 하나님 노릇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모든 신자들은 자신의 자아를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해야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 자아는 이미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함께 심판을 받았고 죽은 것인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살아 있는 것처럼 착각에 빠진 신자들에게 “오늘 너희 그 자아를 버리지 않겠느냐?”라고 묻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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