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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한국교회의 새로운 성장방안

신구약성서연구/기독교윤리학

by James S. S. Jung 2009. 5. 29.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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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한국교회의 새로운 성장방안

 

1. 문제제기

한국개신교의 선교 100주년을 기념하던 지난 80년대(1984~85), 그리고 한국교회는 유례없는 큰 성장에 감격해 하며 세계교회 앞에 자찬하던 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이제 90년 후반으로 다가서면서 한국교회는 ‘성장의 정체성’, ‘개척교회불가론’등의 교회성장에 대한 부정적인 소리들이 들려오고 있다.

실제로 여러 가지 통계 자료에서도 지난 몇 년간의 한국교회성장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리고 1994년 9월 10일자 주간지 기독신보에서는 한국교회 성장의 정체현상이 심각하다는 기사를 실었으며 지난 90년 이래로 해마다 성장의 빈도는 5% 미만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평가가 사실이라면 우리는 한국교회의 성장에 박차를 가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한국교회는 수적인 증가로서의 교회성장이 그 한계를 경험하고 있다는 실제적인 통계와 문제제기의 소리를 들으면서, 지금이야말로 ‘교회의 성장론’이 새롭게 다루어져야할 때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다.

 

2. 한국교회 성장분석 - 성장의 문제성과 정체현상에 대한 원인 규명

1) 한국사회변화와 교회성장

한국사회의 변화와 함수관계에 있었음을 보게 된다. 그 동안의 한국교회의 성장도 그러했으며 지금 그 성장이 둔화되어 정체 현상을 경험하는 일도 역시 한국사회의 변화에 기인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근본적으로 종교는 그 자체가 사회변화에 영향을 주는 주체이면서 동시에 사회변동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실체라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1) 역사적 맥락에서

a. 사회적인 변화

우리 한국사회는 지난 30여 년 동안 급변하는 사회로 대변되었다. 그것은 전통적인 농경문화 중심의 사회에서 산업사회로의 변화를 말한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역사를 보면 교회성장은 언제나 사회적인 변화와 직결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교회의 사회적인 역할관계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b. 개신교 선교

개신교의 복음 선교가 시작되던 1884년부터 한국사회는 급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1882년 한미통상조약으로 서구사회에 대한 문호가 개방되면서 기독교의 복음은 서구의 문물과 더불어 한국사회를 개화하는 새로운 가치관으로 등장하였다. 그 당시 선교는 개인의 영혼구원차원만의 선교가 아니라 사회, 문화적인 차원의 기독교 선교가 병존하는 복음의 총체적인 선교였던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기독교 학교들의 설립과 그 교육을 통한 선교, 병원설립을 통한 의료선교 그리고 그 외의 가난한 자들을 돕는 구제사업 등은 기독교 복음을 한국사회에 뿌리 내리게 한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 국민들이 한국교회를 우호적으로 보게 할 뿐 아니라 구성원의 수적인 증가를 불러일으키게 된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c. 개신교 부흥기

역사적대변화의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는 1907년의 한국개신교의 부흥운동은 1905년의 그 당시 청일전쟁의 결과로 대두된 조선사회의 민족적 위기를 의미했던 을사조약과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1910년의 한일합방이라는 대변혁과 연관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일제 통치의 민족적인 수난의 시대를 거쳐 8.15해방과 더불어 남북 분단과 6.25의 비극적인 사건은 한국교회의 수난과 비극이기도 하였지만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의 복음은 고난을 타개하는 민족의 정신적 지주가 되기에 충분하였다. 특히 제3공화국의 등장과 함께 한국사회의 현대화작업이 급진적으로 추진되던 1960~1980년의 이 기간에 한국교회는 지속적인 민족복음화운동을 전개하여 교회 수나 교인의 수에 있어서 최고의 성장을 기록한 기간으로 평가받고 있다. 물론 이 기간에 한국교회에 급격히 전개된 산업사회로의 발전 은 거대한 도시문화와 아파트문화를 생산하게 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은 새로운 삶의 환경에서 공동체의 상실과 소속의식의 약화현상과 함께 팽배해 가는 개인주의적인 가치관의 지배로 방황하게 되었으나, 한국교회는 소속감과 정체성을 회복하는 일에 크게 기여하게 되었고 이것이 역시 한국교회의 수적 성장의 원인이 되었다고 하겠다.

d. 빈부격차의 심화

그러나 70년대로 접어들면서 한국사회의 경제성장은 크게 발전하였으나 분배의 정의가 실현되지 않아 우리 사회가 빈부격차의 심각한 사회적인 갈등을 겪고 있으며, 한국교회 역시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이름으로 정신적인 보상을 충족시키는 기능을 지나칠 정도로 수행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교회의 기능은 결국 질적인 성장보다는 수적인 성장을 낳은 결과가 되었다.

e. 87년 민주화 선언과 피난처로서의 한국교회

지난 87년 민주화 선언으로 우리사회는 정치적으로 새로운 변화의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 동안 비민주적인 독재정치의 상황이 80년대까지 계속될 때, 정치로 인한 사회의 불안은 역시 한국교회를 통하여 안정과 불안제거의 도움을 입을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한국교회의 정치경제에서 파생된 불안한 사회적상황은 다분히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통하여 피난처를 찾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동시에 한국교회의 급성장과 맞물려 있었다고 본다.

 

(2) 사회변화와 한국교회성장의 정체현상

a. 정치 경제 사회적인 안정

실제로 지난 70년대를 거쳐 80년대로 오면서 한국사회는 갑작스럽게 밀어닥친 산업사회의 도래로 새로운 가치관의 도전을 받게 되었다. 전통적인 가치관이 무너지며 많은 충돌현상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하여 90년대의 한국사회는 선진국으로 향한 도약이 계속적으로 이루어졌고 그 결과 상당한 정도의 수준으로 선진국에 접근하고 있으며 국민의 정부에 이르러 정치 경제적 사회적 안정을 누리게 된 것으로 보여 진다.

b. 사회적인 문제와 갈등감소 그리고 여가와 유흥문화의 확대

한국사회의 변화는 다분히 지금 한국교회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고 하겠는데, 그것은 우리 사회 속에 더 이상 교회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 상황이 전개된다는 사실이다. 그 동안 교회를 통하여 위로와 보상을 받던 사회적 요인으로 인한 문제와 갈등은 점점 우리 사회 속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그리고 현재 가장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는 사회적변화의 요인으로는 역시 여가문화와 유흥문화의 발달이다. 그리고 사람들의 관심이 이러한 것들에 기울어지기 때문에 그 결과가 한국교회에 그대로 미치리라고 예측할 수 있다.

c. 사회 환경여건의 변화

감신대 이원규 교수는 ‘한국교회의 현실과 목회현장에 대해 사회학적인 분석’이라는 글에서 한국교회의 성장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성장둔화의 요인에 대하여 세 가지로 보고 있다. 첫째는 우리 사회의 다원적인 변화이며, 둘째는 정치 사회 경제사회의 구조적 변화이며, 셋째는 기능적 대행물의 출현을 들고 있다. 그리고 ‘한국교회주일성수가 흔들이는 원인이 무엇인가?’라는 글에서도 같은 맥락에서 교회성장률의 감소에 대한 입장을 바로 이러한 환경변화의 사회심리적인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지적해 주었다.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의 환경여건의 변화로 종교에 대한 신앙동기가 약화되고 있다는 점과 한국사회의 경제적인 발전으로 사회적인 안정을 누리던 정체된 시기와 맥을 같이 한다는 것에서 더욱 분명히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d. 사회적인 환경에 대한 목회신학적인 대응의 미숙

사회적인 변화에 대한 대처할만한 그 방법을 한국교회는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한국교회의 성장의 정체성은 심각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할 수 있다.

 

2) 교회성장에 대한 이념에 대한 혼란

한국교회의 성장에 있어서 가장 혼선을 빚고 있는 심각한 문제는 교회성장이념의 혼란이라고 본다. 그 이유는 바로 ‘교회성장’이라는 개념에 대한 혼란이 결국 오늘의 한국교회성장의 정체성을 초래한 또 하나의 원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교회의 성장이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지에 대하여 심각한 논의를 해 보아야 할 것이다.

 

(1) 성장개념의 문제

한국교회는 ‘교회성장’이라는 말을 바로 개 교회의 수적인 증가를 중심으로 한 교세확장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물론 어떤 의미에서는 개 교회적으로 믿는 자의 수가 늘어나고 교회구성원의 수가 늘어가는 것을 교회성장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교회성장’이라는 말은 물량적인 것이기보다는 그리스도교회의 성숙한 모습, 교회에 속한 그리스도인 개개인의 신앙적인 삶의 태도일 뿐만 아니라 이웃과 세상과의 관계에서 복음의 가치를 따라 책임 있게 살아가는 개인의 신앙적인 모습이라면서 동시에 교회공동체의 모습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엄격히 말해서 교회성장이라는 말보다는 오히려 교회의 성숙이라는 말이 더 교회론에 적합하다고 본다.

 

(2) 성장이념의 혼돈된 모습

수적인 성장만으로 이해된 성장이념의 혼돈된 모습은 지금 한국교회의 목회사역에 만연되어 있다.

a. 성장을 절제하지 못하는 교회의 모습이다.

수적인 성장을 전제하는 성장이념은 이제 새롭게 시작하는 교회나, 어느 정도 수적인 근거를 실제로 필요로 하는 작은 교회들의 상황에는 이해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문제는 어느 정도 성장한 교회로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교회의 수적인 성장을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는 점에서 성장이념의 혼돈을 경험하고 있다. 이것은 마치 기업경영에서 보이는 것처럼 교회는 이러한 가치관에 사로잡혀 있다.

b. 더 심각한 문제는 교인의 수를 늘리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데 있다고 본다.

교인 수를 증가시키기 위하여 가장 많이 적용하는 방법론이 ‘총동원주일’이다. 총동원주일이란 일종의 전도운동으로 개교회의 모든 회원들이 각기 전도대상을 몇 명씩 정하게 하고 교회의 주일예배에 초대하는 운동이다. 이러한 총동원 주일이라는 이름의 전도가 새로운 그리스도인들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존 신자들을 뺏어오는 문제로까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 교회들이 선교의 선한 뜻으로 개척교회를 세우거나 새로운 교회를 설립하는 것이 아니고 기존교회 안에서 목회자와 부목사 사이에 갈등의 극복이 교회 앞에 교회 뒤에 교회 위에 교회 밑에 교회를 세움으로써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새로운 그리스도인들의 증가라기보다는 기성교인들의 위치변경을 경험할 뿐인 것이다.

c. 교회의 물량주의이다.

교회성장 이념의 혼란은 실제로 한국교회가 극심한 물량주의에 빠져있다는데 그 원인이 있다. 평신도들의 생각 속에는 큰 교회가 좋은 교회라는 오해를 가지고 있으며, 목회자들 역시 교인 수와 헌금 액수를 높이는 교회와 목회자를 성공한 목회자로 인식하고 있다는데 있다. 이러한 가치관 때문에 적은 수의 교인을 가지고 있는 목회자들은 심한 영적인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는 듯도 싶다. 이러한 열등감은 저마다 빠른 기간 내에 교회를 부흥시키려는 생각에 사로잡힘으로써 비인간적이고 비도덕적인 방법들이 동원되기도 한다. 큰 교회들은 자기 교인이 다른 교회에 뺏기지 않아야 한다는 자기 교인관리라는 명분 아래 가까운 지역교회로 나가야할 신자들을 대형버스를 이용하여 자기교회로 데려가는 교인쟁탈전과 같은 일들을 벌이고 있다.

 

(3) 수적인 성장 이념의 비판

a. 복음전도 운동의 필요성

성경적으로 볼 때 그리스도의 복음이 땅 끝까지 증거 되어야 한다는 것은 교회에 주어진 주님의 명령이요, 기독교의 대 사명이다(마 28:19-20). 그러한 복음이 한국 땅에도 전파되어 한국교회가 그동안 성장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지금도 선교학의 과제는 복음전도를 위하여 효과적인 방법론을 찾아내고 적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교회는 아직도 불신자가 다수인 우리 민족을 향하여 복음 씨를 뿌려야 하고 복음전도운동을 계속 전개해 나가야 한다. 교회에 속한 자의 수도 늘어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b. 교회의 질적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

교회의 성장을 오로지 수적인 성장, 교세확장이라는 관점에서만 이끌어온 교회성장의 이념은 이제 그 한계를 맞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교회 성장의 이해로서의 개념을 전개해야 한다는 점이다. 원래 수적인 성장이론을 가속화시키고 정당화했던 현대교회성장 이론의 대부는 미국 풀러신학교의 맥가브란과 피터 와그너 교수이다. 아마도 이들의 이론이 제시되면서 수적 성장을 교회성장의 목표로 삼고 기독교의 복음전도운동이 미국과 세계선교지 곳곳에서 그리고 특히 한국에서 크게 유행된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이들의 교회성장 이론을 그 성장 개념에서부터 새롭게 논의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하며, 오직 교회의 수적인 증가를 전제한 교회성장 이론은 오직 개 교회의 수적인 증가만을 성장으로 취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피터 와그너는 그의 교회성장론에서 질적인 교회성장은 복음의 문화적 책임이라는 주제 하에 그 여지를 수용하고 있지만 그러나 여전히 수적인 증가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목표달성을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딜레마를 여전히 안고 있다.

c. 수적증가의 교회성장이론의 문제점

수적증가의 교회성장만을 주장하는 이들의 이론에서 발견되는 가장 성경적인 근거는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마 28:19-20의 본문과 사도행전에 소개되고 있는 예루살렘교회가 그 모델이 되고 있다(행 2장). 즉 예루살렘교회의 세례자의 숫자가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 이후에 갑작스럽게 120명에서 3,000명으로 늘어난 것처럼(행 2:41), 교인의 수가 증가되는 것을 교회성장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개교회의 수적인 성장을 교회성장의 중심적인 과제로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초대교회의 숫자는 지속적으로 큰 규모의 인원이 계속 모여 예배드리던 교회가 아니었고 곧 흩어지는 교회가 되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스데반의 순교와 박해는 이것을 잘 증명하고 있는 사건이다.

d. 교회성장이론의 혼돈의 결과

이러한 숫자를 증가시키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행위는 결코 교회의 공신력을 떨어뜨리고, 기독교의 구원의 진리를 값싼 은혜로 전락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으며 지금 성장이 둔화되고 정체되는 결과의 원인이 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이러한 성장이념의 혼돈을 극복하고 새로운 성장방법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목회관을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3) 교회의 도덕성 상실의 문제

(1) 교회성장에 대한 개념혼돈은 결국 교회로 하여금 도덕성을 상실하게 했다.

한국교회 성장이 정체된 이유는 목회자와 그리스도인 즉 한국교회의 도덕성의 결여에 있다고 본다. 그리스도의 교회가 가르치는 진리는 복음의 가치요, 하나님나라의 가치인 그리스도인의 사랑이요, 용서와 화해, 평화의 정의, 영생으로의 구원 등이 그 중심을 이룬다. 그러나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그것들을 익히 알고, 잘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그 가치를 삶에서 실현하거나 본을 보이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다. 그러한 영적이며 정신적인 가치는 삶에서 실현되어야할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그것이 기독교의 신앙적인 가치요, 삶이다.

 

(2) 한국교회성장요인

그동안 한국교회의 성장은 교회의 지도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생활의 모습과 그들의 도덕성 문제에 직결되어 있었다. 예를 들면 초대교회의 신앙적인 인물들은 대부분이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는 자들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애국적인 정신과 민족을 사랑하는 그들의 인격성과 신앙심들이 한국교회와 기독교가 존경받는 근거가 되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사회적으로 비 그리스도인들이라 할지라도 기독교에 대하여 긍정적인 태도와 반응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한국교회의 역사가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한국교회에 대한 평가는 전혀 그렇지 않다.

 

(3) 맛을 잃어버린 소금과 빛

한국교회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 빛은 세상을 비추지 못할 상태로 타락해 버렸으며, 소금은 그 맛을 잃은 지 오래되었다. 기독교인들은 이제 비윤리성뿐만 아니라 특히 성직자들의 비윤리적인 일들은 이제 공공연히 들려오고 있는 일들이다.

 

4) 간과하고 있는 교회의 본질적인 과제

불란서 신학자 알프레드 로이지(Alfred Loisy)는 “예수가 전파한 것은 하나님나라였는데 지상에 생겨난 것은 교회이다”라는 의미 있는 말을 남겼다. 물론 교회를 부정적으로 생각하여 한 말은 아니다. 그러나 서구세계의 교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과 관련하여 특히 하나님나라와 관련하여 비교해 볼 때 전혀 근친성과 유사성을 갖지 못한 모습에서 하나의 평가기준을 제시한 소리로 사료된다.

 

(1) 교회의 본질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일이다.

본 훼퍼는 그리스도의 교회는 세상 가운데서 타자를 위한 교회이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이것은 디아코니아로서의 본질을 밝혀 준 것이라 하겠다.

 

(2) 교회는 섬김과 봉사를 통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곳이어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봉사의 일은 두 가지 계명으로 주어진다. 먼저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요, 다른 하나는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는 일이다. 여기에서 사랑한다는 것은 물론 섬기고 봉사하는 것을 말한다.

 

(3) 모이는 교회와 흩어지는 교회

모이는 교회는 예배를 중심하여 성도의 교제가 이루어지는 것이며, 흩어지는 교회란 세상 가운데서 세상을 섬기는 일이다. 성도의 교제로서 하나님의 말씀과 성례를 통하여 영적인 힘을 공급 받는 것이라면 봉사로서의 교회는 섬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경험하는 수단인 교회이다.

 

(4) 참모습을 상실해 가는 교회

교회자체가 세속화되어간다. 물량주의와 물질주의적인 교회가 되어가고 있다. 교회가 지나치게 개 교회의 수적성장에 얽매이다 보니, 교회가 감당해야할 사회적인 책임을 간과하는 데서 참모습이 더욱 상실되어가고 있다.

 

(5) 교회 재정의 사용문제

교회의 헌금사용에 있어서 일 년 전체 예산중에 95%이상이 교회 자체의 운영을 위하여 소모하며, 사회를 위하여 4.5~7% 미만을 사용한다는 것이다.(박창민, “한국교회의 사회봉사실태와 전망”, 기독교사상, 1993년 10월호, p.18)

 

(6) 삶의 가치부여를 제공치 못하는 교회

한국교회는 젊은 층은 물론 지성인들로부터 매력을 잃어가고 있다. 교회는 더 이상 지성인들과 청소년들에게 가치를 의미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데 있다. 교회의 본연의 모습을 잃어가는 한국교회는 이제 근 본질을 되찾아야 한다.

 

5) 심각한 개 교회주의와 한국교회 성장의 불균형문제

(1) 교회성장의 불균형

한국교회의 심각한 병리현상 가운데 하나는 개교회주의 사상의 만연에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개교회주의 사상은 오늘날 한국교회의 성장을 기현상의 구조로 만들어 놓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도시교회와 농촌교회, 그리고 도시의 중산층 교회와 아직도 자립의 상태에 이르지 못한 소형교회 사이에 존재하고 있는 성장 불균형의 현상이다. 자립된 교회는 재정은 물론 인적자원의 확보에 따라 새로운 프로그램과 나름대로 축적된 노하우를 통하여 계속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만, 아직도 자립하지 못한 소형교회들은 성장가능성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이다.

 

(2) 작은 교회 출석을 기피하는 현상

작은 교회는 나름대로 전도활동을 통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실제로 수평이동을 통한 교인들의 등록현상은 작은 교회가 아닌 큰 교회를 선호하고 있는 추세이다. 작은 교회일수록 개인적으로 희생하며 감당해야할 일들에 대한 두려움과 부담감 때문에 선뜻 작은 교회 등록을 기피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3) 교회간의 협력과 유대관계가 필요하다.

같은 교단 같은 노회 안에서도 교회와 교회간의 연합과 유대는 거의 전무한 상태에 있다고 본다. 특히 협력이 이루지는 경우를 보면 목회자 또는 교인을 통한 개인적인 친분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3. 한국교회 성장의 새로운 방향과 그 방법론

한국교회의 성장대안은 두 가지 관점에서 생각해야할 것으로 본다. 첫째는 목회자들의 의식 전환과 관련한 새로운 목회관의 설정과 그 성장대안이다. 둘째는 기존교회의 구조를 전제하면서 아직도 미 자립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작은 교회들을 살리는 방법을 찾는 바로 이 두 가지 관점이다.

 

1) 새로운 성장방향설정과 목회관

(1) 다원적인 목회의 이해

a. 모이는 교회와 흩어지는 교회로써의 역할과 모색

그동안 우리의 목회패턴은 모이는 교회로서의 의미가 그 중심이었다. 그리고 목회자들의 유일한 소망은 하나의 장소에 많은 수의 성도를 모으는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오늘날 다원적인 사회 환경에서 이런 전통적인 목회관과 목회방향은 점차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보여 진다. 오히려 “미시오 데이(Missio Dei)"의 선교 이론에서 해석하는 대로 모이는 교회와 흩어지는 교회로의 발상이 그 대안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b. 교회성장의 불균형과 다양한 교회형태를 지닌 교회의 출현

그동안 한국교회는 이미 대형교회와 소형교회의 유형으로 이원화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도시교회와 농촌교회의 대칭은 그 동안 한국교회의 성장구조가 만들어낸 불균형으로 지적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목회 일선을 보면 다양한 형태의 교회들이 산재해 있다. 대형교회, 중소형교회 등은 나름대로의 다양한 특성을 나타내고 있다. 크고 작은 수많은 교회들을 보면 예술인교회, 스포츠인들이 모이는 교회, 직장인들이 모이는 교회, 교수들이 모이는 교회, 대학생교회, 대학교회, 각종선교회들이 모이는 교회, 아파트교회, 이층교회 등 다양하다.

c. 정보화 디지털시대를 지나 유비쿼터스시대에 접어든 사회변화에 대응해야 한다.

첨단 과학기술의 발달은 멀티미디어시대를 열어주고 있으며 이러한 기술개발은 역시 다원적인 목회패턴을 가능하도록 기여하고 있다. 이미 비디오 영상매체를 통한 교회의 예배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설교의 테이프는 어디서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해 주고 있다. 지금은 교회에 출석하지 않고도 자기가 원하는 설교자의 설교를 들을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한곳에서 모여 예배드리는 교회는 이제 다원적인 교회들이 될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되었다.

 

(2) 바른 교회 성장이해

a. 교회성장과 목회자의 목회관

한국교회의 성장은 목회자들의 노력에 달려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목회자가 어떤 목회관으로 노력하느냐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지금까지는 목회자들이 강요당한 목회관은 교회의 수적인 성장이념이었다. 그리고 쉽게 수를 모아 놓아야 성공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는 사회적인 가치관에 빠져있다고 본다. 사회적인 가치관이란 결국 실적이 없는 자는 도태되거나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교회의 회원의 수가 늘어나지 않는 것이 목사의 책임이며, 헌금의 액수가 오르지 않는 것이 목사의 책임으로 인식된 것이 오늘의 목회현실이다. 그러나 어떻게 생각하면 이 모든 짐을 목회자 스스로가 짊어지고 있다고 본다.

b. 목회자의 책임

목사의 목회에 대한 권한과 책임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전무하도록 되어 있다. 즉 교인을 관리하고 치리하는 권한은 목사 개인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당회원의 공동권한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의 재정과 살림의 관리는 공동의회와 제직회를 통하여 집행하도록 되어있다. 그런데 재정의 문제까지 목회자가 다 짊어져야하는 현실이다.

c. 성숙된 신앙인으로 양육해야 한다.

교회성장과 관련하여 목회자가 짊어져야할 책임이 있다면 그것은 성도들의 신앙이 성숙하게 되도록 돕는 것이다. 우리가 앞에서 살펴 본 것처럼 교회성장이 결코 외형적인 모습에 있지 않고 모여온 개개인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성숙을 전제해야 한다는 점이 목회관이 되어야 한다. 신앙성숙이란 하나님 앞에서 복음이 요구하는 것에 상응하는 신앙적인 삶의 태도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신앙적인 삶의 태도형성에는 기대되는 영혼구원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복음의 사회적인 책임을 함께 짊어지는 하나님나라의 과제에 대한 충분한 인식에서 가능하다.

d. 진정한 교회성장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자의 수적인 증가에 한정하기보다는 더 나아가서 복음의 사회적인 책임을 함께 인식하는 자들의 공동체적인 활동을 함께 생각해야한다. 그 때문에 교인의 수가 많아지는 교회 성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로 함께하는 온전한 공동체가 중요한 것이다.

 

(3) 성숙된 교회를 향한 목회적인 방향

a. 이상근 목사

한국 개신교 선교백주년 해에 쓴 “현대목회의 특징과 방향”이라는 글에서 이미 한국교회의 약점을 네 가지로 지적하면서 한국교회가 나아가야할 성장의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교회의 분열, 신학적 약점, 윤리의 미숙성 등을 제시했다. 이러한 제안으로 그는 첫째, “신학체계의 정립”, 둘째, “자주적인 교회생활”, 셋째, “기독교윤리의 정착”, 넷째, “교파의 정리” 등 네 가지 소 범주 안에서 한국교회가 성숙해 가야할 방향을 안내해 주고 있다.

b. 이계준 교수

그는 80년대 초기에 “흩어진 교회로서의 교회성숙”이라는 글에서 한국교회가 지향해야할 목회적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는데 그의 제안은 오늘날 새로운 관심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본 훼퍼의 “성숙한 시대”와 하비콕스의 “세속화”에 대해 깊이 인식해야할 때가 왔다고 경고하면서 성숙한 교회됨의 모습을 세 가지로 정의하고 있다. 첫째, 등불로서의 교회(마 5:16)를 말하며, 둘째, 누룩과 같은 교회(마 13:33, 고후 5:6), 셋째, 소금과 같은 교회를 들고 있다.

c. 박시원 목사

제임스 파울러의 이론에 의지하여 90년대의 한국교회 목회방향을 네 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첫째, 하나님나라를 위한 인간성숙의 과제로서 기독교교육목회을 강조했고, 둘째, 인간의 가치와 의미를 추구하는 상담목회에 대한 방향, 셋째, 부도덕한 사회 현실과 빈부의 격차에 대하여 사회 윤리적 차원의 목회가 이루어져야 하며, 넷째, 복음주의적인 목회를 들고 있다.

 

2) 교회본질 회복의 시급성

(1) 교회개혁이나 갱신에 대한 슬로건

한국교회는 지금까지 보여 준 부정적인 모습, 즉 교회의 도덕성을 회복해야 하며 목사의 질 낮은 인격적인 모습을 빨리 벗어버려야 한다. 흔히들 한국교회의 개혁이나 갱신문제를 전제하면서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구호들을 듣는다. 그리고 그 표준은 언제나 사도행전의 교회를 든다. 그러나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라는 말은 심도 있게 이해되어져야할 것이다. 대체로 “사도행전의 초대교회”로 라는 슬로건에서 쉽게 성령 충만을 강조하고, 성령의 은사를 강조하며, 반언 등의 경연대회 행사로 흘러가면 이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전도를 위하여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던 공동체를 가리킨다. 바로 한국교회가 초대교회를 본받아야할 것이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교회의 성장도 이 방향에서 성숙되어야할 것이다.

 

(2) 교회의 본질적 과제

교회가 행해야할 그 본질적인 과제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복음 안에서 믿는 자들이 공동체를 이루어 하나님과 교통뿐 아니라 그 복음 안에서 믿는 자들이 공동체를 이루어 하나님과의 교통뿐 아니라 성도의 교제를 나누어야한다. 그리고 세상에 다시금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의 실천인 세상과 이웃을 향하여 섬기는 일을 해야 한다.

 

(3) 교회의 사명

교회가 감당해야할 본질적인 사명은 첫째, 복음을 전하고(케리그마), 둘째,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고(코이노니아), 셋째, 섬기는 교회(디아코니아)이어야 한다(엡 4:11-16). 그리고 교회는 하나님의 부름으로부터 부름 받은 백성들의 모임으로서 그의 말씀 안에서 위로를 받고 사랑을 나누며 그의 약속을 통하여 새로운 삶의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준비하는 장소이다. 교회는 언제나 그 본질을 잃지 않도록 힘써야 하며 복음증거의 사랑의 교제 그리고 봉사의 삶, 세 가지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

 

3) 교육목회실현을 통한 교회성장

교회성장의 최대의 목표는 단지 모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의 소집이면서 삶을 통한 신앙인격의 질적인 변화와 그의 나라의 섬김에 있다. 그리고 이것을 실현하는 방법은 교육목회의 실현에 있다.

 

(1) 성경적인 근거

a. 서로 고려되어야할 선교와 교육

교육목회의 가장 대표적인 성경의 가르침은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9-20)는 말씀이다.

b. 교육목회의 구체적인 방법

주님의 교회에 ‘목사를 세우신 것’은 ‘성도를 준비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바울은 강조한다. 우리 말 번역은 ‘성도를 온전케 하며’라고 번역되었는데 원 뜻은 성도를 준비시키는 것이다.(엡 4:11-16)

 

(2) 교육목회의 필요성

a. 신앙인격의 온전한 양육과 훈련

교육목회는 데려오기의 전도만을 일방적으로 몰아가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복음전도가 이루어지도록 먼저 그리스도인의 양육과 훈련을 꾀하는 작업이다. 신앙인격의 온전한 양육과 훈련이 전제될 때에 데려오는 전도운동은 양육된 그들에 의하여 후차적으로 뒤따라오는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교육목회의 목표는 가르침을 통하여 개인의 신앙의 양육을 기대하며 그리스도를 뒤따르는 인격의 변화를 기대하고, 하나님나라를 위하여 헌신하는 신앙적 삶을 훈련함을 의미한다(엡 4:11-16).

b. 데려오기 식의 전도운동은 비 성장을 초래할 수 있다.

믿는 자의 인격적인 변화 없이 교회의 수적인 성장을 기대하는 것은 바로 지금까지 실천했던 데려오기 운동, 총동원주일행사의 여러 가지문제들에서 경험한 바요, 그것은 성장이 아니라 오히려 성장을 초래하며, 데려오기 운동의 비인격적인 일들로 인하여 오히려 지금한국교회가 정체현상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라 생각된다.

c. 평신도를 일깨워야 한다.

평신도를 일깨워야 한다. 근년에 ‘평신도를 깨운다’는 한 목회자의 제자훈련 프로그램은 하나의 좋은 본보기라 할 수 있다. 물론 그 교회도 지금은 대형교회로 성장했지만 그 목회자의 정신과 의도는 교육목회에 상응하는 것이라 하겠다.

 

(3) 교육목회의 목표

a. 섬기는 자로 양육하는 일이다.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섬기는 자로 만드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봉사하는 일군으로의 양육이다. 신학적으로는 하나님나라의 일군이며, 개교회적으로는 교회의 봉사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지 교회의 서리집사가 되게 하거나 장로가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전 삶을 통하여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는 것이다. 오히려 사회적으로 이웃과 관계에서 기독교적인 가치를 실현하는 신앙의 성숙된 삶이어야 한다고 본다.

b. 주일학교 곧 성장세대를 위한 교육에 힘써야 한다.

교육목회에서 제일 많이 관심을 두고 투자해야 할 부분이 평신도를 양육하고 훈련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부분은 바로 주일학교 성장 세대를 위한 교육목회이다. 이것이 바로 지금부터 21C로 향하는 한국교회가 힘써야할 성장의 실제적인 목표이다.

 

4) 교회연합운동을 통한 소형교회의 책임적인 지원(구체적인 성장대안)

a. 개 교회주의를 극복해야한다.

한국교회는 지나친 개 교회주의를 극복하고 함께 한국교회 전체가 교회의 성장사역을 책임져야한다는 전제하에서의 제안이다. 한국교회는 여러 교파로 분열되어있지만 그리스도안에서 궁극적인 교회는 하나이다.

b. 성장과 성숙을 위한 교회의 연합운동의 필요성

한국교회는 진정한 교회의 성장과 성숙을 위하여 교회연합운동을 전개할 필요성이 있다. 한국교회의 분열과 수적인 성장만을 추구하던 한국교회는 이제 성장이 둔화되고 있는 결과를 맛보고 있다. 그리스도안에서 모든 교회가 하나임을 인식하고 연합하는 교회의 모습을 나타내야만 한다.

c. 교단 또는 지교회간의 경쟁을 지양해야 한다.

이제 더 이상 한국교회는 교단 간 또는 지교회간에 서로 다투거나 분쟁하는 일을 중단해야 한다. 우리가 해야 할 경쟁과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라, 악마와 음부의 권세를 잡은 자들이다.

d. 교회연합은 반드시 실현되어야 한다.

연합의 필요성은 첫째, 선교사역의 성공적인 성취를 위한 것이며, 둘째, 이단을 분별하고 구분하기 위한 일이며, 셋째, 기독교사회봉사를 책임 있게 감당하기 위한 일이며, 넷째, 기독교교육의 실현을 위한 일이다.

e. 미 자립교회의 실재적인 지원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개교회적인 방식에서 이제는 연합을 통하여 미 자립교회를 돕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노회산하의 시찰이나 노회 또는 총회 선교부를 통하여 미 자립된 교회를 도울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그 구체적인 방안이란 교회실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전폭적인 지원과 함께 교회의 통합이 필요한 곳은 하나의 교회로 연합하게 할 뿐만 아니라 목회자의 생활까지 책임질 수 있는 지원을 통하여 교회가 속히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결론

교회의 본래적인 사명과 그 사명을 성취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기 위한 목회와 교회성장을 위한 방안 등을 연구하고 실천해야 한다. 현재 한국교회는 사회적으로 공신력을 잃어가고 있으며 도덕적으로도 실추되어 있다. 지금까지 수적인 성장만을 추구함에 따라 나타난 여러 가지 문제들을 야기 시켰다.

지금까지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물량주의의 가치관이 한국교회를 지배해왔다. 이러한 기존의 성장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21C 한국교회가 새로운 교회성장을 추구하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먼저 새로운 목회관의 추구와 목회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이제 한국교회는 새로운 교육목회와 교회의 연합 그리고 미 자립교회를 비롯한 우리 사회의 인권사각지대라 일컫는 곳에 사랑을 나누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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