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새서 3장 주석”
정신섭(호서대학교 신약신학)
1. 서론
바울은 하늘에 속한 생명을 가진 자로서의 삶을 강조하고 있다. 바울은 거짓사도들이 주장하고 있는 열매 없는 행위는 그것이 비록 그들에게 유익한 것들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할 참된 행위와는 대립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즉 ①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역사하시고자 원하시는 것을 알게 되면 인간적인 생각들을 쉽게 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②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이 밝혀지면 우리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 이상으로 더욱 고상하고 탁월하게 되어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시는 대로 우리의 마음을 민첩하게 움직이게 되고 인간적인 것들을 하찮게 여기게 되기 때문이다. ③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하늘에 있는 생명을 생각해 보라고 권면하고 있다.
바울은 경건한 자가 걸어야할 정로(正路)에 대하여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교훈들은 교인들로 하여금 더욱 의식들을 멸시하게 만들고 있다. 바울은 이미 그들에게 준 교훈들을 확고하게 붙잡도록 권면하고 있다. 바울은 경건하고 거룩한 생활을 묘사하고 있으며, 그 목적은 인간들의 관습이 지니고 있는 헛된 그림자가 소멸되었음을 보여주고자 하는데 있다. 동시에 바울은 거짓 사도들이 자기를 공격해 올 것을 예상하고 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스스로 더 나은 것들을 행하라고 명함으로써 어떤 경우의 헛된 말이라도 용납하지 않고 있다. 바울은 그들이 무가치한 유희로 경건한 자들의 정로(正路)를 가로막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그들에게 적지 않은 악평의 짐을 지우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바른 신앙과 교리를 가진 자들이 마땅히 윤리생활에 성실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3:1~4절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신령한 생활을 추구하는 것이 옳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좇는 자들이 해서는 안 될 일들을 나열함으로써, 영지주의에서 주장하는 ‘도덕폐기론’을 은연중에 경계하였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취해야할 선한 일들을 열거하고 난 후(12~17), 아내들(18), 남편들(19), 자녀들(20), 부부들(21), 종들(22~25)에게 그리스도인들이 지켜야할 윤리생활을 권하고 있다.
2. 내용분해
A. 골 3:1-4/ 기독교적인 삶의 교리적 근거 -> 위엣 것을 구하는 삶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그 마음속에 있는 열망들은 그리스도께서 추구했던 것처럼 위의 것들에 초점이 맞추어야한다.
B. 골 3:5-17/ 옛 생활과 새 생활 -> 악을 벗어 버리고 사랑을 입는 삶
1) 약한 욕망과 함께 옛사람의 모습을 벗어버려야 한다(3:5-9).
2) 삶의 방법과 목적이 그리스도를 닮아야하며 인종이나 계층사이에 차별이 없는 새사람의 특성을 입어야 한다. 바울은 말하는 새로운 삶이란 곧 그리스도인이 입은 은혜와 사랑, 평강과 감사, 하나님의 말씀으로 피차간에 그 믿음이 성장하고, 서로 섬김을 통해 그리스도의 의를 이루어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3:10-17).
C. 골 3:18-4:1/ 기독교인의 가정생활 -> 그리스도인의 가정윤리
1) 아내와 남편은 상호간 존경의 태도가 있어야 한다(3:18-19).
2) 자녀는 순종이, 부모는 절제가 있어야 한다(3:20-21).
3) 종은 그리스도의 종이다. 따라서 마치 주께 봉사하듯 그의 육신의 상전에게 순종해야한다. 반면에 상전들은 하늘에 계신 주인을 기억하면서 자신의 종들을 정의롭게 대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3. 본문연구
A. 골3:1~4.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야할 정로(正路) -> 위엣 것을 구하는 삶
바울의 전제는 골로새인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것이다(2:20).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을 신뢰하고 인간의 종교적 규정을 따르는 대신 그리스도안에서 마땅히 살아야 하는 대로 살면(2:21-23) 거룩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바울 시대의 많은 사람들은 하늘의 영역은 순수하고 영원한 것으로써 이는 일시적이고 썩어지는 땅의 세계와 대조를 이룬다고 생각했다. 유대 묵시문학저자들 역시 천상의 영역과 지상의 영역을 구분하면서 상층천에 있는 하나님의 영역의 순결함을 강조했다. 골로새에서 문제를 만들어 내고 있던 유대신비주의자들은 아마도 신비적인 체험을 통해 이러한 상층 영역들을 추구하고 있었을 것이다(2:18). 하지만 바울은 하늘에 있는 단 한 가지만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는데 그것은 곧 그리스도이다. 전후 문맥을 보면 그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천상의 가치들을 포함시키는데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을 또한 그분과 함께 높이심을 받았기 때문에 그러한 가치를 손에 넣을 수 있다(엡 2:6). ‘위엣 것’이라는 말은 때로 이런 식으로 사용되었다.
1)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은 신자(1절)
a. 부활은 곧 승천을 수반하는 말이다.
승천은 부활과 동행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지체들이라면 하늘로 올라가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하늘로 들림을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도 자기와 더불어 끌어올리실 수가 있다. 우리들은 실제적으로 이 세상에 살고 있긴 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위엣 것을 구하고 있으므로 이 땅에 매어 있지가 않다.
구원받은 성도는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되었지만 지금 당장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위엣 것 곧 하나님나라를 사모하며 살아야 한다. 여기에서 위엣 것이란 단순히 물리적인 방향만을 내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방향, 곧 하나님의 존재와 선과 진리와 의와 생명을 향한 추구를 의미한다.
b. 하나님우편에 서게 될 그리스도인들
우리를 곧장 하늘로 오르게 해 주시는 그리스도에 관해서 참되고 거룩하게 생각하는 것이 그를 경배하는 것이요, 우리의 마음을 그와 더불어 거하도록 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우편은 하늘에만 국한되지 않고 온 세상에 충만해 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에워싸고 계시다는 것을 말하여 우리와 그리스도 사이에는 간격이 있어 분리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함과 동시에 그의 엄위가 우리를 움직여 전적으로 그에게 경배를 하도록 해 주신다고 믿게 한다.
우편이라는 단어는 오른 쪽을 말하는데 이것은 “능력”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특별히 성경에서 우편은 권세와 영광을 상징하고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우편에 앉아 계신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영광과 권세를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마귀가 가지고 있던 사망의 모든 권세를 깨뜨리시고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하나님과 함께 온 우주를 다스리는 통치자로써의 영광과 권세를 부여 받으셨다(빌 2:9-11).
2) 땅엣 것을 생각하지 말라(2절)
a. 땅엣 것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여기에서 땅엣 것이란 땅에 속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더러운 정욕이나 재물이나 전토나 집이나 또는 이 현실생활 가운데 있는 다른 어떤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데 이것들은 우리가 사용하지 말아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틀림없이 사용하고 있는 것들을 의미하고 있다고 본다. 바울은 의식들에 대한 그의 논쟁을 계속하면서 그 의식들을 우리는 땅엣 것에 굴복하게 하고 마는 덫과 같은 것으로 비유하고 있다. 바울은 ‘땅에 있는’ 육체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듯 하다. 그것은 오류에 빠져 교인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 사람들이 영혼은 천상의 것이고 영원하지만 육체는 땅에 있는 것이고 썩어지기 때문에 중요하지 않다는 헬라의 견해를 채택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바울은 몸을 가지고 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그들 자신의 언어를 사용하여 역설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여 진다.
b.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폐지된 의식 곧 하늘에 것을 하찮게 여기게 하는 것들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승천하신 곳으로 우리를 부르신다. 그러나 이 의식들은 우리를 끌어내린다고 했다. 이 말은 그가 조금 전에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의식들이 폐지되었다고 했던 말의 결론이며 해석이다. 이 말씀을 의역하면 의식들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죽은 바 되었고 너희도 또한 의식들에게 죽은 바 되었다. 너희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늘로 올리웠으니 너희는 위엣 것들만을 생각해야할 것이다. 그러므로 땅엣 것을 벗어 버리라”는 것이다. 바울은 우선 하늘엣 것을 하찮은 것으로 여기는 유전들을 반대하기 위해서 그는 확실히 착실하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3)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진 생명(3절)
a. 그리스도와 함께 죽지 않은 사람은 그와 더불어 다시 일어날 수 없다.
우리는 세상에 대하여 죽어야만 그리스도에 대해서 살 수 있다. 만일 그리스도와 함께 죽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다시 살 수 없다. 따라서 죽음은 부활보다 앞선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는 다 너희 가운데서 볼 수 있도록 하라는 말과 같다.
b. 감추어진 생명에 대한 이해
만일 우리가 십자가와 더불어 여러 재난들의 불명예 속에 묻힌 우리의 생명이 죽은 바와 진배없는 것이라고 투덜거리거나 불평하지 않도록 하려면 우리의 생명이 비밀에 싸여 있지만 밝히 드러날 그날을 끈기 있게 기다려야 한다는 것은 생각해 볼 가치가 있는 일이다. 우리의 기다림이 불안스럽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하나님 안에’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라고 한 전치사를 주의 깊게 보아야 한다. 이 말들은 우리의 기다리는 것들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할지라도 우리의 생명은 위험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신실하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에게 위임하신 것을 부인하지도 않으시고 그가 보호하심에 있어서도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으신다. 또한 그리스도와의 친교는 더욱 안전하게 될 것이다.
c. 감추어진 생명은 우리의 소망
어디를 보든지 간에 우리는 아무 곳에서도 생명을 볼 수가 없다면, 깨우침을 받아야 할 이유도 없다. 우리는 소망으로 구원을 받았다. 이미 우리 눈앞에 있는 것들을 바라지 않는다. 바울은 우리의 생명이 단지 세상이 보기에 감추어졌다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감각으로 볼 때에도 감추어졌다고 말한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죽음으로 에워싸여 있으므로 이 세상이 아닌 다른 곳에서 생명을 찾는 우리의 소망은 참되고 필연적인 시도이기 때문이다.
4)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날 우리의 생명(4절)
그리스도의 오심이 우리의 생명을 나타내실 것이라고 한 것은 놀라우신 위로이다. 이와 동시에 바울은 앞날에 대한 변절된 감정은 그날까지 인내하며 기다리기를 거절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만약 우리의 생명이 그리스도 안에서 닫혀졌다면 그가 나타나실 때까지 감추어져 있어야만 할 것이다.
B. 골 3:5-8.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1)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5절)
땅에 있는 지체란 내적인 것 즉 정신적인 능력과 의지, 그리고 우리의 부패한 성품 모든 것들을 의미한다. 바울이 지체라고 말한 것 가운데 악한 것들을 열거하고 있다. 바울은 육신의 악한 것들이 우리 속에서 번성하고 있는 한 우리는 땅에 속해 있기 때문에 성령으로 새롭게 하심을 입어야만 하나님나라에 속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부정이란 말은 음란한 사람이 범하는 온갖 종류의 부패와 방탕한 생활을 말한다. 사욕은 모든 악한 유혹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 말은 다른 종류의 정신적인 불안과 이성과 상반되는 무질서한 감정을 나타낸다. 탐심은 눈이 어두워지게 하여 하나님을 부인하고 하나님 대신 그것을 좇게 한다. 질병과 같이 널리 퍼져있으나 오히려 미화된 모습으로 좋게 여김을 받는 거짓된 사상으로 인간의 내면에 그려져 있다. 저자는 ‘음란’을 가장 먼저 경계했으며 사람의 정욕, 그리고 훼방과 부끄러운 말 등 사회적인 죄악도 포함시켰다. 이러한 죄악들이 위험한 이유는 이것들로 인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게 되기 때문이다(3:6). 이 세상을 심판하실 하나님은 도덕적인 분이시며 이러한 죄악을 범하는 자들은 그분의 궁극적인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된다.
2)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이 진노가 임하느니라(6절).
바울은 믿지 않는 자들이나 불순종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인격적으로 대해 주시는 대신 하나님의 진노를 임하게 하시는 것이 보통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진노를 우리보다 버림받은 자들에게 느끼게 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은혜의 약속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을 때 모든 경건한 자들은 그것이 특별히 자기를 위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빈번하게 그의 자녀들에게까지 노를 발하시며 때로는 그들의 죄를 엄하게 벌하시는 것으로 말씀되었다할지라도 바울은 오직 버림받은 자에게만 보여 질 수 있는 영원한 멸망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a. 그리스도 밖에 살 때에 행하는 던 일 -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바울은 골로새교인들이 그 가운데 살 때에 행하였던 악한 것들을 말하고 있다.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갈 5:25)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이 사는 것이 먼저이고 행하는 것은 그 다음이다. 바울은 이러한 말을 통하여 골로새교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죽은 바 된 악한 것들을 더 이상 행하지 말고 무가치한 것으로 알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b. 육신의 악한 성품대로 행하던 것을 버려야 한다.
이 말은 육신으로 살기를 그친 후를 말한다. 육적인 생활을 끊었다고 하는 것은 금욕의 영향과 본질인데, 그것은 다시는 우리 안에서 죄가 그 열매를 맺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모든 부패한 성품들이 우리 안에서 소멸된 것을 말하는 것이다.
C. 골 3:9-11.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로서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버리라
1) 너희는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9절).
a. 거짓말
바울은 거짓말을 금할 때 온갖 종류의 교활함과 모든 사악한 속임수를 정죄하고 있다. 이 말을 중상모략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일반적으로 신실한 것과 대립되는 것으로 본다. 바울은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안에서 친구가 되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b. 옛사람과 그 행위
옛사람은 우리가 모태로부터 가지고 나온 모든 것과 우리의 본성에서 나온 모든 것들을 의미하고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워짐으로서 벗어버리게 된다. 반면에 새사람은 그리스도의 영으로 말미암아 의에 순종하도록 거듭난 자이다. 따라서 그의 본성은 같은 영으로 말미암아 그 참된 완전으로 회복되어진 것이다. 옛사람이 먼저 나온 것은 우리가 아담으로부터 태어난 후, 다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시 태어났기 때문이다.
2)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10절). -“새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 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a. 성령의 조명
바울은 맨 먼저 생명을 새롭게 하는 것은 지식 안에서 되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바울이 말하는 지식은 충만하지 못한 단순하고 벌거벗은 지식이 아니라 성령의 조명을 가리키고 있다. 성령의 조명은 생명력이 있고 유효하기 때문에 진리의 빛을 밝혀 깨닫게 해 줄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b.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형상은 이성뿐만 아니라 의지까지도 올바르게 만들어줌으로 전 영혼 속에 존재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중생의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것과 아울러 모세가 말한 하나님의 형상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을 배우게 된다. 하나님의 형상은 모든 영혼의 올바르고 완전무결함이기 때문에 사람은 하나님의 지혜, 선, 의를 나타내는 거울로 표현된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약간 다르게 말하기는 했으나 그 의미는 같다(엡 4:24). 바울은 골로새교인들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는 것이 최고의 복이요, 우리들이 완전하게 되는 길이므로 다른 더 좋은 것을 바랄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3) 거기는 분별이 있을 수 없다(11절). -“거기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당과 무할례당이나 야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분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느니라”
a. 차별의식이 없는 곳이다. 즉 신분이나 차등이 없는 곳이다.
바울은 골로새교인들이 차별의식을 버리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이 완전하게 되는 것은 그러한 외면적인 의식들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b. 만유의 주되신 그리스도
오직 그리스도만이 머리와 꼬리, 즉 처음과 나중을 붙잡고 계신다는 뜻이다. 더 나아가 사도가 의미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영적인 의로서 그리스도에 의해 의식들이 폐지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의는 참된 완전함이 되고도 남는다.
D. 골 3:12-13. 새롭게 된 증거와 용서에 대한 교훈
1)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으로 옷 입고(12절)
바울은 ‘만일 너희가 긍휼과 자비 등을 행한다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롭게 되어진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긍휼과 자비 등은 새롭게 된 상징과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울의 권면은 새롭게 된다는 은유적인 표현으로 긍휼과 자비 등을 사용했다. 바울이 말하는 긍휼은 우리의 마음속에서부터 간절히 열망함과 더불어 일어나는 진실한 사랑을 말한다. 자비는 우리 스스로가 사랑을 받게 되는 것을 말한다. 바울은 또한 교만을 버리고 스스로 겸손하게 되어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욕구하지 아니하면 어느 누구도 온유한 자가 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온유는 자비보다 더 넓은 의미를 가진 말로 보는 것과 말하는 것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때문에 이것도 역시 내적 성품에 속한다. 우리는 종종 악하고 배은망덕한 사람들 가운데 빠지는 일이 있으므로 우리의 온유를 자라게 하기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하다.
2)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하라(13절).
이 용서는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이 때문에 바울은 그리스도를 예로 들어 자기의 교훈을 확실하게 하고 있다. 우리에게도 그리스도와 같은 용서가 있어야 한다. 우리는 매우 빈번하고 심하게 그리스도를 대적했기 때문에 결코 그의 긍휼을 받을 수가 없는 처지였음에도 긍휼을 받았으므로 우리의 자비로움을 이웃에게 베풀어 그들이 무슨 잘못을 우리에게 행하였던지 용서해 주어야 한다. 바울은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이라고 말하고 있다.
E. 골 3:14-17. 감사하는 자가 되라.
1)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14).
a. 사랑의 가치
이 모든 것 즉 자비, 온유, 용서할 마음자세를 위해서 그들 가운데 ‘사랑’을 가지라고 하는 권면의 좋은 근거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은 그들이 사랑을 가져야만 그러한 자가 될 수 있다고 하는 말과 같다. 사랑이 없는 곳에서 이 모든 것들을 구하는 것은 공연한 허사일 뿐이다.
b. 온전하게 매는 띠
바울은 사랑을 더욱 높이기 위해서 사랑을 가리켜 ‘온전하게 매는 띠’라고 불렀다. 이 말은 모든 덕이 사랑 안에 들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이것은 진실로 우리의 모든 생활과 행위의 규범이 되기 때문에 이것에 따라서 다스려지지 아니하는 모든 것들은 다 그릇된 것들이다. 아름다운 생활과 행위란 그 밖의 다른 방도로는 불가능하다. 이것이 사랑을 가리켜 ‘온전하게 매는 띠’라고 부른 이유이다.
2)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또한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감사하는 자가되라(15).
a. 그리스도의 평강
우리 속에 세워주신 것을 가리켜 하나님의 평강이라고 한 것은 장차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평강이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것으로 우리 마음을 주관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평강은 자주 우리를 논쟁, 불화, 싸움, 은밀한 원한을 갖게 하는 모든 육적인 성품들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따라서 바울은 부패한 성품들에 매이지 말라고 명하고 있다.
b.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으니 감사하는 자가 되라.
바울은 한 몸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 말의 의미는 우리들이 한 몸의 지체들로 서로 연합하지 않고서는 하나님과 조화를 이룰 수가 없다는 뜻이다. 또한 칼빈은 바울이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명한 것은 지나간 은혜들을 아름다운 것들로 기억하라는 의미로 보지 않는다고 했다. 칼빈은 ‘사랑하는 자가 되라’고 명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감사로 가득 차게 되면 우리들 가운데 점차 성숙된 사랑을 나누는 자리로 나아가는 데 실패함이 없으리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3)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16절)
a. 피차 가르치며 권면
바울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맛만 보아야 한다고 하지 않고 그것이 그들 속에 거하여야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점점 더 더 성장하고 나아가는 것을 목표로 이해할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배우고자 하는 열망은 수없이 유혹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자신의 욕망이나 헛된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서 잘못 사용되기도 하고 타락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바울은 ‘모든 지혜’로 라는 말을 덧붙여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훈을 받아야하고 또 지혜롭게 되어야 할 것을 말해 준다. 또한 바울은 이 지혜를 간략하게 정의하기를 골로새교인들이 ‘피차 가르치는 것’이라고 말한다.
b.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
바울은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라는 말 속에 모든 종류의 노래를 포함시키고 있다. 이것들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이 적절한 찬송 노래로서 단지 입으로만 하든지 혹은 다른 방도로 하든지 다 포함하고 있다. 또 신령한 노래는 단순한 찬송만이 아니라 권면과 다른 주제들을 포함하고 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의 노래가 영적이기를 바라고 천박하고 무가치한 장난으로 하지 말라고 했다.
c.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골 4:6)는 말씀은 곧 무슨 말이든지 받아들이기에 적합하게 하고 듣는 사람을 유익하고 즐겁게 할 때에 익살과 헛된 소리와 비슷한 것들을 대적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 할 때와 같이 마음에서부터 우러나는 노래를 해야만 단지 입으로 말하는 표면적인 소리가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은 모든 사람이 자기 혼자서 은밀히 노래를 하라고 말했다고 해서 그렇게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바울은 준비된 마음은 혀로 노래함에 이르기 때문에 이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를 바라고 있다.
4)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아버지께 감사하라(17절).
우리가 무슨 말을 하거나, 행하든지 간에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권위에 의해 지배를 받아야하며, 이러한 그리스도의 지배를 받음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아야한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모든 선한 것들을 주신 것처럼 우리 역시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버지께 감사를 드려야 함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F. 골 3:18-25. 기독교인 가정생활과 사회생활
1) 아내와 남편(골 3:18-19) - 상호 존경의 태도가 있어야 한다.
바울은 아내들에게 복종하라고 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고 한 번 더 강조하고 있다. 또한 바울은 남편들에게 사랑과 그들을 괴롭히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다.
2) 자녀와 부모(골 3:20-21) - 자녀는 순종이 부모는 절제가 있어야한다.
바울은 자녀들에게 예외 없이 자기 부모들에게 순종할 것을 명하고 있다. 그런데 부모가 그들에게 어떤 불법한 것을 강요한다면 그때에도 순종해야하는가 하는 문제가 야기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사람의 권위를 하나님보다 우위에 둔다면 이는 가장 부당할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서도 ‘주 안에서’라는 전제조건을 추가해야 한다고 본다. 그렇다고 하여 부모를 거역하고 의견이 일치하지 않다하여 복종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모든 일에’ 즉 힘들거나 뜻이 일치하지 않다할지라도 어떤 것에든지 거절하지 말라는 것이다. 관심이 없는 ‘모든 일에’ 부모이기 때문에 그 일에 복종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부모역시 자녀들에게 지나치게 또는 가혹하게 함을 금해야 한다고 본다. 능력이 없어 감당할 수 없는 것을 실해하게 한다든지 강요하지 않도록 권고하고 있다.
3) 종과 상전(골 3:22-4:1)
종은 그리스도의 종이다. 따라서 마치 주께 봉사하듯 그의 육신의 상전에게 순종해야한다. 반면에 상전들은 하늘에 계신 주인을 기억하면서 자신의 종들을 정의롭게 대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고대법은 종을 인격체이지만, 재산으로 보았다. 그들은 주인에게 순종할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게으른 자로 보았다. 종은 자신의 노력으로 발생하는 이익을 나누어 받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종들에게 자신의 일을 주님께 바치라고 권고하고 있는 것이다.
a. 종들에게 주는 교훈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에게 섬김을 받으시도록 나타나셨으므로 최고의 통치권과 최고의 주가 되심을 단호하게 주장해야 할 것을 의미하고 있다. 지배아래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 주인을 기쁘게 섬기면 그들의 순종을 그리스도께서는 마치 자신에게 드린 순종인 것처럼 받아 주시겠다고 하신 말씀을 들을 때, 실로 진정한 위로가 된다. 여기에서 바울은 또 그들이 그리스도에게서 보상받을 것을 추측해 내는데 그것은 기업의 보상이다. 바울은 이 말을 통하여 행위의 대가로 지불되어진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것임을 의미하고 있다. 왜냐하면 기업은 양자에게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바울은 종들에게 위로를 주고 있다. 만약 그들이 그들의 주인들에게서 불의하고 잔인한 행위로 압제당하면 하나님께서 직접 갚아주실 것이요, 그들이 종이라는 이유 때문에 그들이 당한 손해들을 못 본 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인격의 차별이 없으시다. 혹 그들이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관심을 주시지 않다 하거나 크게 보살펴 주시지 않고 자기들의 슬픔을 모르신다고 생각했었다면 이 말씀은 그들에게 용기가 될 것이다. 한편 종들이 나쁘고 잔인한 대접을 받은 것에 대해 복수를 하려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러한 행위는 죄악이라고 미리 말함으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심판 때까지 인내함으로 기다리도록 권고하고 있다.
b. 상전들에게 주는 교훈
상전들은 마치 높은 자리에 오른 것처럼 종들의 처지를 멸시하고 자기들은 법에 매이지 않은 자로 생각하기 때문에 바울은 그들에게 적절한 위치에 머물도록 해준다. 종들이나 상전이나 다 똑같이 하나님의 권위 아래 예속되어 있다. 그래서 바울은 공평을 베풀라고 말한다. 종들도 모든 전유물을 가질 비슷한 권리가 주장될 수 있으므로 상전들은 지나치게 종들을 부려서 자기들에게 매이게 하지 말아야 한다.
4. 결론
골로새서 3장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칙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즉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칙은 위엣 것을 추구하는 일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은 자는 이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우편에 앉아 계신 그 하늘에 속한 자임을 깨닫고 천상의 것을 추구해야 한다(1-2).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살고 있기는 하지만 그리스도안에서 그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함께 이미 죽은 자들이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생명은 이제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으며, 장차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날 것이다(3-4).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옛사람의 습성을 버려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버려야할 옛사람의 성품으로는 음란, 부정, 사욕, 탐심 등을 말한다(5)-(7). 곧 그리스도인들이 버려야할 옛사람의 행실들을 말한다. 분노와 악의와 비방하는 말과 거짓말을 버려야한다(8-9a). 그리스도인들이 앞에서 말한 옛사람의 습성들을 버려야할 이유는 그리스도인들이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은 자가 되었기 때문이다(9b-11). 여기에서 새사람이란 다름 아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참된 지식에 이르기까지 새로워져 가야할 자이며, 마땅히 그에 걸맞은 삶을 살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새사람을 입어야한다. 새사람은 하나님의 성품을 본받아 그의 덕스러운 면들을 갖추어야 함을 말한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 간의 사랑의 표현(12-14), 마음의 평강과 감사(15), 말씀의 능력 안에 풍성히 거할 것(16-17) 등을 새사람의 미덕으로 밝히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있는 동안 인내와 자기 노력으로 규범들을 지켜나가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께로부터 능력을 입어야만 그렇게 살아갈 수 있다. 그 능력이란 부부생활의 경우 서로 사랑하고 존경(18-19)할 수 있어야 함을 말하며, 부모와 자녀는 순종과 공경을 통하여 서로 사랑의 관계를 유지(20-21)하는 능력을 말하며, 주종(노사)관계에서는 성실함과 의와 공평함으로 나타내는(3:22-4:1) 능력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삶은 당시 여자와 자녀들이 한 가정에서 종처럼 무조건 순종하고 지나치게 구속당한 것과 부모들의 비인격적인 태도 그리고 노예의 무조건적 복종과 주인의 횡포 등이 난무하던 상황에서 진리가 구현되어야할 그리스도인의 생활지침을 제시한 것으로써 그리스도의 공의와 사랑을 드러내는 진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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