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강 하나님나라와 한국사회에 대한 바른 이해
1. 하나님나라와 사회적인 관계에 대한 이해
1) 19C
19C 자유주의신학에서 나타난 사회주의 사상의 영향에서 찾을 수 있다.
서구의 사회주의 사상과 기독교 사회주의 정치이데올로기에 이르기까지 발전했던 역사적인 일이다. 특히 미국에서는 사회복음주의운동으로 표현했던 Walter Rauschenbusch도 있었다.
2) 20C
20C 신정통주의 신학의 시대를 거쳐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신학과 현대의 정치신학, 해방신학에 이르면서 이러한 다양한 신학적인 입장들은 교회의 통일보다는 교회분리를 초래했다.
3) 한국교회의 상황
(1) 정통 보수주의와 자유주의의 대립을 가져왔다.
보수주의는 외면적이거나 소극적인 입장인 반면 자유주의입장은 지대한 관심을 뛰어넘어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문제해결이 곧 하나님나라의 일이며 교회의 일로서 교회의 사명으로 규명했다. 한국교회는 해방신학의 영향으로 한국적신학의 창출로서 민중신학은 한국사회 속에 새로운 영향력을 행사하는 복음으로 비쳐지기조차 한다고 했다.
(2) 최근의 한국교회의 특성
신학과 교파간의 혼합주의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상호간 좋은 것은 수용하고 있는 형상이다. 반면에 종교다원화 현상으로서 자신의 몸은 그대로 두고 교회의 연합을 꾀하고 있는 모습이다. 최근 사회적인 특성 중 하나는 사회적 특성이었던 빈익빈 부익부 현상에 교회 간에 뚜렷해지는 현상이다.
2. 하나님의 주권과 한국사회에 대한 이해
1) 그리스도의 통치영역
아브라함 카이퍼는 화란 자유대학의 개교식 연설에서 '하나님의 주권영역'이란 주제로 연설하는 가운데 "인생의 어떤 영역 중에서 만유의 주인 되신 그리스도 앞에서 자기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은 1cm도 없다"란 유명한 말을 했다(K. Runnia, 하나님나라와 사회, 64).
2) 하나님나라
천지만물을 창조하신하나님은 곧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나라를 다스리신다. 하나님나라는 예수의 지상사역과 더불어 시작되었다(막 1:15). 그리고 하나님나라는 그리스도의 역사 속에 내재한다(요 1:14). 그리고 역사 속에 실재하는 나라로 세워졌다. 그것은 역사 속에 진리의 빛으로 현재화 되어지고 있다. 그것은 누룩과 같이 지금도 확산되어지고 있다.
3)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하나님나라
그리스도의 통치란 죄와 불순종으로 타락한 인류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통치란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 받은 자들을 사랑으로 통치하시는 나라이다.
4)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나라
하나님나라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질 전 우주적인 구원이다(롬 8:15-18, 갈 3:28). 하나님나라는 역사 속에서 일어난 현재적 사건이지만 아직은 완성되지 않은 곧 언약 안에서 도래할 미래적인 나라이다.
이러한 관점에 볼 때 한국사회는 하나님의 창조세계로서 하나님의 통치영역에 속한 영역이며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으며 그리스도가 통치가 현재적으로 이루어져야할 영역이다.
5) 하나님나라의 실현의 장으로서의 한국사회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나라의 실현의 장으로 사회를 바라 볼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나라의 복음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그리스도의 몸이요, 성령의 교제의 산물인 교회를 통하여 전파되었다. 하나님나라의 복음은 교회를 통하여 전파되며 교회의 영역을 뛰어넘어 전 문화영역과 인간의 삶 전 영역을 향하여 전파되고 있는 것이다.
6) 교회의 사명과 역할
교회는 하나님나라를 전파해야할 책임과 의무를 지니고 있으므로 교회는 곧 하나님나라의 도구이며 수단(통로)이라할 수 있다. 따라서 교회는 하나님나라를 전파하며 또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관리할 책임을 지닌 곳이다. 아무튼 교회는 하나님나라가 지상에 전파되고 확대되고 그리스도의 통치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할 사명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3. 역사 속에서의 한국교회의 모습
1) 개신교의 복음전파와 한국의 정치사회적인 상황
(1) 개신교의 복음전파
1882년 서구 문명과의 접촉을 꺼리던 한국사회는 한미통사조약을 계기로 문호를 개방하였다. 이 문호개방을 통하여 1884년 미국공사관의 공의로 한국에 들어온 알렌의 의술에 의한 사역이 곧 복음전도의 사역을 가능케 하는 문을 열어준다. 한국사회 속에서 하나님나라의 사역은 대부분 미국선교사들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2) 정치사회적인 상황과 복음전도운동
조선왕조는 고종말기에 이르러 국제정치와 역학관계에 의해 국제교류에 대처할 힘을 갖추지 못한 채 외세 투쟁의 전시장이 되어버렸다(청일, 노일전쟁). 1905년 을사보호조약과 더불어 1910년 한일합방이 이루어지면서 대한민국은 국권상실의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러한 민족적인 위기에서 하나님나라의 선교는 1907년에 일어난 기독교대부흥운동의 역사적인 결실을 맺게 되었다. 이러한 운동의 성격을 보면 복음적으로는 하나님나라의 운동이면서 동시에 사회적으로는 한국정치사회적 위기와 관련되어 나타난 민족운동이었다. 선교 초기부터 기독교선교는 한국사회에 순수한 복음적인 선교에 의한 교회설립 뿐만 아니라 의료선교, 교육선교, 구제선교 등을 통하여 하나님나라의 실현을 이루었다고 본다.
(3) 1910년에서 1945년까지
이 당시 한국민족과 사회는 베벨론 포로시대와 같은 수난의 시대를 경험하게 되었다. 이때의 한국사회는 교회를 설립하긴 했지만 그 기반이 연약했고 반기독교적인 일본의 통치로 한국기독교는 선교사들과 함께 수난의 시대를 보내게 되었다. 이러한 수난 속에서도 하나님나라의 선교는 자연스럽게 민족의 독립운동과 관계를 갖게 되었다. 삼일운동에 기독교 지도자들의 참여는 곧 한국교회가 한국사회의 수난과 함께 했던 증거이기도 하다. 일본은 신사참배를 통하여 한국교회를 핍박했으며 이에 다수가 굴복하기도 했지만 소수의 지도자와 성도들은 이러한 핍박과 탄압을 순교와 고난으로 극복해 내기도 했다.
(4) 해방에서 1960년대까지
1945년 일본의 통치에서 민족이 해방되는 기쁨은 잠깐이었다. 또다시 1960년대까지의 민족적인 수난은 정치, 경제 이데올로기의 양립으로 민족이 남북으로 나누이는 비극을 맞이하게 된다. 이것은 더 크게 6․25의 동족상잔의 비극적인 전쟁을 낳게 했고 이러한 민족 분단은 오늘날도 계속되고 있는 현실이다.
미국선교사들에 의하여 전파된 복음은 한국교회의 안정과 성장과 자립의 환경을 이루는 데까지는 이르렀지만 그러나 한국교회가 혹심한 교파의 분열을 초래하게 되는 아픔을 겪었다. 이러한 배경에는 크게 두 신학적 입장의 대립이었다. 즉 보수신학과 진보신학의 대립이다. 이들의 주장은 한국사회의 현재적인 상황에 대한 한국교회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근본이해와 방법에 대한 대립으로 볼 수 있다.
정치사회적으로는 자유당의 붕괴와 4월 혁명, 5․16군사혁명의 격변을 거치면서 70년대 초에 이르기까지 한국교회는 교파분열의 진통과 함께 교회 자체의 안정을 추구하기에 바쁜 시기였다.
신학적으로는 근본주의신학이 지배하면서 교리적인 논쟁과 함께 자유주의 교회와 보수주의 교회의 대립이 극대화되어간 시기였다. 이 기간 동안 하나님나라의 선교와 하나님나라의 실현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한 시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70년대에 들어오면서 한국교회와 한국사회는 사회적인 변화추구와 함께 극심한 변화의 혼란 속으로 빠져 들어가게 되었다. 특히 정치적인 혼란을 거듭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고 본다.
(5) 70년대에서 오늘 현대까지
급진적인 산업사회의 가속화는 한국사회 속에서 교회를 통한 하나님나라의 실현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정통신학의 입장을 표명하는 보수교회와 둘째, 자유주의 신학을 표방한 진보주의 교회의 입장의 대립이다.
a. 정통보수주의 신학적 입장과 그 교회들
보수주의 입장은 대체로 성경의 절대권위에 충실한 복음주의적인 입장이 교회들이다. 특히 복음전파는 곧 십자가의 도만 전한다는 입장이다. 하나님나라의 개념을 보면 이 땅과 구별된 죽음 후에 도래하게 될 죽음 저편의 나라로 이해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구원론에서도 역시 영혼구원이란 것이 항상 전제되고 있다.
한국보수주의 교회들은 한국의 정치사회적인 위기나 남북한 이데올로기의 대립의 위기적 상황을 언제나 복음전도의 기회로 삼았다. 이러한 복음전도운동은 개인전도운동과 개교회 부흥전도운동을 통하여 수적인 부흥을 통하여 한국사회에 비추어진 하나님나라의 모습일 것으로 본다.
자본주의의 팽배와 함께 나타난 사회적인 문제는 역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다. 이것은 사회적인 문제일 뿐만 아니라 교회와 교회 간의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누가 교회 부흥시키지 못하라 했느냐고 묻는다면 아무도 답변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자본주의적인 산업사회와 함께 다국적 기업의 출현과 고도의 자본경영기술과 마케팅에 의한 거대한 경제구조는 소규모 상업주체와 조직들은 경쟁력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위기에 처해있다. 물론 교회도 예외일 수는 없다. 거대한 자본에 의해 운영되는 경영과 마케팅 전략은 국가와 기업은 물론 소규모의 경제구조들의 치열한 경쟁을 낳은 것이다.
b. 자유주의 입장과 그 교회들
자유주의 입장의 교회들은 제3공화국의 출현과 함께 현실적인 정치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기 시작한 교회들이다. 특히 70년대에 와서 제3공화국이 유신정권으로 변신할 때에도 진보주의적인 교회의 투쟁은 계속되었다. 이러한 정치적인 투쟁은 80년대에 발생한 12․12사태와 함께 연달아 발생한 광주 민주화운동, 그리고 제5공화국의 출범은 한국사회와 정치를 극심한 혼란에 빠지게 했고 이러한 일련의 모든 사회정치적 불의에 대한 투쟁은 87년 민주화선언에 의하여 한 단계 새로운 한국사회의 평정을 얻기까지 진보적인 교회들은 민주화 투쟁에 의한 희생과 고난을 치러야만 했다. 이러한 진보적인 교회들의 그 기조는 19C 자유주의신학에서 파생되었던 하나님나라가 이 땅에 실현되어야 한다는 인간으로서의 책임의식에서 출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80년대 들어와서는 한국사회의 권력구조에서 파생되는 정치적인 문제 자본주의적 구조에서 파생되는 경제적 정의문제, 산업사회의 환경이 요구하는 민주화의 문제, 심지어 자연환경 보호문제, 군비축소와 핵무기 감축문제에 이르기까지 사회전반에 존재하는 인간의 근본문제에 선지자적인 역할을 강조했다.
그러나 신학적인 이해에는 일방적으로 긍정할 수 없다. 사회적 이상으로서 사회정의와 민주화가 서로 하나님나라의 이상과 간격이나 차이가 없이 동일시하는 문제에는 동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유주의 신학은 한국사회 속에 실현의 과제를 위한 행동하는 크리스찬 상을 뒷받침하기 위해 새로운 한국적 신학으로서 독창적 해석인 민중신학을 태동시켰다.
민중신학은 70년대의 한국상황에 사회적 문제로 등장한 도시빈민과 근로자들과 학생과 언론인 지성인이자 종교들이 정치, 경제, 사회적 경험을 통하여 얻은 의식에 기인하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민중신학에는 회개, 중생, 새사람, 성만찬, 교회 등은 특별한 의미가 없다. 더욱 사죄나 속죄의 의미도 없으며 구원과 부활이라는 것도 기독교가 말하는 것과는 다르다. 민중신학은 예수를 민중에게 맞추고 있는데 사실은 민중을 예수께 맞추어야할 것이다. 그 이유는 민중이 예수를 위하여 죽은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민중을 위하여 죽으셨기 때문이다. 한편 민중신학은 곧 자본주의사회의 빈익빈 부익부의 모순구조가 파생시킨 한국사회의 소외계층의 문제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교회와 신학의 과제로 인식시킨 면에서는 그 공헌이 크다고 본다.
4. 산업화를 지나 정보화 사회에 접어든 한국사회와 하나님나라의 실현을 위한 교회의 역할
1) 농경중심사회로부터 산업사회로 전환된 한국사회
농경문화 중심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전환된 한국사회는 지난 60년대 후반부터 온갖 대립과 갈등 그리고 변혁과 조정을 통하여 안정된 사회를 추구해 가고 있다. 한국사회는 제3공화국의 등장과 함께 한 정치가에 의하여 하나의 정치적 경제적 기반을 갖지 못한 민족적인 가난으로부터의 해방을 이루었다. 이데올로기의 대립 속에서 즉 민주화세력과 진보세력간의 대립과 갈등 속에서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세"라는 구호아래 민주세력의 희생과 진보세력의 득세 아래 경제적인 안정을 계속적으로 추구해 왔던 것이다. 당시의 제3공화국은 5․16혁명으로 세워진 정권이었기에 그 정당성의 문제가 반정부운동가를 초래하는 역사적인 비극과 사회적인 불안요인이 되기도 했지만 그 당시 가난했던 한국사회적인 입장에서 필연적인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70년대에 이르러서는 대통령 중심제의 막대한 권한 강화와 국민의 일치단결을 이루기 위해 '유신체제'라는 토착적으로 해석된 '한국적민주주의'가 생겨나고 1인 독재체제로 급속하게 변질되어 갔다. 18년간의 공화당 정치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는 다를 것이지만 당면한 숙제였던 가난의 늪을 벗어나기 위한 대다수 국민들의 몸부림은 '잘살아보세'라는 구호 아래 묵인되고 수용되어진 정치였다. 이러한 급진적인 공업화 또는 산업화는 근면, 자조, 협동이라는 노동정신은 '잘살아보세'라는 구호 아래 우리 민족 모두를 노동자로 만들었던 세월이었다. 이러한 급진적인 사회적인 변화는 농경중심의 문화가 공업화되어지는 과정에서 다양한 직종에 의하여 다양한 문화와 사회구조를 이루게 했다.
2) 산업사회의 특성과 이에 따른 사회적인 문제들
(1) 현대산업사회는 과학기술에 의존된 사회가 되었다.
과학이 지배하는 현대 산업사회는 그 사회를 만들어 낸 인간이 과학에 의하여 즉 기술문명에 의한 지배를 받아야하는 주객전도의 현상으로 비인간화의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2) 산업사회구조의 인간은 전적으로 경제의존적인 구조 속에서 살아야만 한다는 점이다.
노동은 경제력을 창출시키고 인간의 삶을 더욱 풍요롭고 넉넉한 삶을 가능케 하는 순환관계를 이루게 한다. 그러나 문제점은 이러한 경제의존적인 구조 속에서 생산 활동과 경제적인 부의 획득은 근본적으로 자본주의적인 이념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나 빈익빈 부익부의 모순적악순환을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다.
(3) 자연 파괴의 문제이다.
과학문명의 발달은 곧 자연을 파괴하고 자연 속에 있는 자원을 고갈시키며 인간이 사용한 쓰레기에 의하여 더욱 자연환경을 오염시키는 결과를 초래함으로 환경문제를 낳는 것이다.
(4) 정치권력 구조의 문제이다.
정치란 시민사회의 삶의 가능성을 위한 질서 확립의 기술이라고 본다면 한국사회의 정치는 그동안 이러한 정치적인 이상을 위하여 독재적이고 획일적인 통치방식에 따라 인권이 유린될 수 있는 많은 약점을 지니고 있었다고 본다. 그동안 한국사회는 제5공화국의 정치적 보수성과 폐쇄성으로 말미암아 극단적인 방법까지 동원되어 민주화 투쟁을 불러일으켰고 마침내 87년 6․29민주화 선언으로 일단락되어 새로운 차원으로의 전환을 가져왔던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한국사회는 아직도 정치구조, 경제구조, 교육구조 등을 비롯한 사회적인 문제들을 안고 있다. 지금도 한국사회는 노사분규와 전교조 등과 함께 남북통일 문제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문제해결을 위하여 노력하지만 실제로 많은 시행착오를 격고 있다고 본다.
3) 정보화시대에 접어든 한국사회의 문제점들
(1) 관계중심의 사회이기 보다는 개별주의적인 사회로 치닫고 있다.
가족중심사회 즉 농업구조의 사회는 가족구성원들 간의 상호협력을 통하여 자기를 희생함으로 가족구성원의 안정과 행복을 가져다 둔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터득하며 자란다. 그러나 급격한 산업화는 이러한 가족구성원의 협력이 가져다주는 안정과 행복을 경험할 수 없는 핵가족화 된 사회구조는 상호 간의 협력보다는 자기가 속한 직장에서의 제한적이고 통제된 범위 안에서의 협력과 희생이 요구될 뿐 극히 제한된 공간과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고독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가 시간을 통하여 가족 구성원은 물론 친구와 이웃 간의 교제는 가능한 사회였다고 본다. 그러나 최근에는 전문화된 정보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더욱 세분화되고 전문화된 사회구조를 형성함으로써 더욱 제한된 공간과 교제가 이루어지게 된다. 뿐만 아니라 여가 시간의 활용 역시 개별주의적인 시간을 보내게 되어 인간관계 형성이 점점 어려워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2) 정보화 된 사회는 개인의 정보 유출과 그에 따른 악영향의 위험이 높다.
최근에는 개인의 정보를 지키기 위한 보안시스템이 개발되고 그 정보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 사회적인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DNA 검사를 통하여 질병을 치료할 목적으로 사용되어지는 것은 좋으나 그것이 인간의 값을 먹일 수 있는 악한 정보로 사용될 때에는 인간이 상품화 되어버릴 위험이 공존하고 있는 사회이다.
(3) 정보화된 기기들을 통하여 인간은 차츰 개별화되어가고 있다.
산업화 사회까지는 주로 여가시간을 다른 사람들과의 교제하는 일에 활용했지만 정보화된 사호에서는 개인 컴퓨터를 통하여 그 여가시간을 홀로 사용하는 경향들이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가능한 일이 되어지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인 구조 속에서 나타나는 사회적인 질병이 곧 우울증이다. 대인관계의 기피는 물론 사회적인 생활까지 기피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4) 하나님나라의 실현을 위한 한국교회의 역할
(1) 교회의 선교적인 사명에 대한 재인식
지금까지는 한국교회는 보수교회와 진보교회간의 선교적인 사명인식이 한편에서는 복음전파와 함께 다른 편에서는 사회적인 책임으로서 봉사활동이라는 이원론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보수적인 교회에서는 죄인으로서 회개와 중생을 중심으로 한 개인전도와 개인구원에 역점을 두는 선교관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에 진보적인 자유교회에서는 보수주의 입장을 무시하고 사회적인 책임만을 강조함으로써 정치적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투쟁하는 일에 역점을 두었다.
복음의 본질은 인간자신을 개혁하고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그가 처한 환경까지도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며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한 인간을 복음으로 변화시키는 일 뿐만 아니라 사회의 불의와 구조적인 악의 개선을 위한 노력에도 투철한 자기 행위를 보여야할 것이다. 이것은 선교의 새로운 인식에서만이 가능하다.
(2) 이원론적인 사고의 극복
보수주의적인 교회들의 신앙적 사고에는 이데올로기적인 요소가 있다. 이들의 사고는 복음의 진리를 신앙하는 것이 아니라 이데올로기를 신앙하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기독교와 이데올로기의 관계는 시대마다 피비린내 나는 교리적 논쟁과 기독교의 복음전파는 불신앙의 세계와 산재하고 있는 무신론 사상과의 대결 때문에 불가피하게 이데올로기적 방식을 의존하여 하나님과 기독교의 진리를 변증해야만 했다. 지금도 기독교신학은 철학에서 제기되는 새로운 인식방법론이나 이데올로기적인 인식의 틀을 빌려서 그리스도의 복음진리를 오고 오는 세대에 새로운 언어로 말해 주어야할 신학적인 과제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 목적은 어디까지나 진리를 증거 하기 위함이지 철학을 증거 하거나 이데올로기가 그 진리와 동일시 될 때 기독교 진리는 다른 이데올로기 중의 하나가 되는 이데올로기 상대주의에 빠지게 된다.
한국기독교역사는 민족분단이라는 운명과 함께 정치적인 이데올로기에 종속되는 환경을 지니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이념에 사로잡혀 복음과 기독교의 진리를 말해야하는 딜레마를 안고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의 정치적인 상황은 공산주의 이념보다는 자본주의 이념을 선호해야하고 선택해야하는 환경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인식은 이러한 정치이데올로기를 맹신해 버릴 것이 아니라 양 체제 이데올로기의 장단점이 무엇인지를 복음의 빛 속에서 바르게 판단할 줄 아는 지혜를 가져야할 것이다.
예를 들면 제3공화국의 정치적인 이데올로기로서 '잘살아보세'라는 슬로건은 일하며 노력하는 근면적인 인간상을 심어주고 경제적인 부의 실현이 가능하게 했던 긍정적인 면을 가진 반면에 그 이데올로기에 영향을 받은 한국교회는 모든 성경을 물질주의적인 세상적인 축복으로 해석하여 설교하고 축복했던 기복주의적인 신앙관이 형성되게 했던 부정적인 면을 지니고 있다.
지금이라도 우리는 이 딜레마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우리의 신학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이 제시하는 기준과 시각에서 이 세상에 나타난 모든 이데올로기를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데올로기는 공산주의만이 아니라 소수의 독점 자본주의가 낳은 빈익빈 부익부의 구조적인 모순을 극복하려는 정치인과 기업인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3) 정교분리 원칙도 새로운 시각전환이 필요하다.
한국기독교의 선교 백여 년 동안 선교사들이 교훈했던 정교분리의 가르침에 충실하였다. 그것은 선교사역에 필연적인 것이다. 그러한 원칙이 한국의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기독교가 조용히 뿌리내리게 하는 전술이었을 것이다. 정치와 종교는 그 독자적인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본질적 과제수행을 위해 독립적이어야 하고 서로 간섭의 관계에서 어려운 시련이 되지 않아야 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교회는 교회로서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 할 것이고 국가는 국가로서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할 것이다.
(4) 교회론에 대한 재해석
신학적으로 지상에 세워진 교회는 세상 가운데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불려 진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의 모임이요,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의 몸과 그 지체이며 그리고 성령 안에서 교제하는 신앙공동체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교회와 사회와의 관계는 언제나 세상의 시민이요, 세상의 백성으로서 세상을 위한 교회이어야 한다. 예수의 계명인 이웃사랑의 실천적 관계에서 볼 때에 더욱 그렇다고 본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본질과 교회의 본질은 세상에 있으나 항상 세상에 속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교회는 동시에 이웃의 봉사적인 관계에서 세상을 위하여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세상에 복음을 증거 해야 할 선교적인 입장에서 볼 때, 교회와 사회는 서로 나눌 수 없는 한 쌍과 같다. 즉 동전의 양면과 같다. 그러므로 교회의 전통적인 인식이 교회는 교회 그 자체를 위하여 있다고 생각하던 차원을 넘어 교회는 역시 세상을 위해서도 있는 것이라는 인식으로 수정되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에 한국교회의 한국사회 속에서 그 역할과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5) 교회의 실제적인 과제
한국교회의 사회 속에서 사회적 문제들이 어떤 행동을 나타낼 수 있는 지 그 구체적인 사례들을 '그랜드 래피즈'의 보고서(Evangelism and Social Responsibility, 1982, 43-45)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랜드 래피즈는 이 보고서에서 사회봉사의 영역과 사회활동이라는 두 영역으로 구분하여 기독교의 사회적인 책임과 행동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다.
사회봉사적인 측면
사회활동적인 측면
1. 가난한 자를 돌보는 인간 궁핍의 구제행위
2. 자선활동
3. 각 개인과 가족단위로의 도움을 제시하는 것
1. 인간의 궁핍원인제거
2. 정치적, 경제적인 활동
3. 정의추구
사회적인 활동은 정치적인 것을 수반한다. 빈곤과 압제에서 해방될 때까지 사람보다 구조에, 교도소 수감자의 복권보다 교도소 제도의 개선에, 공장보건보다 근로자들의 보다 많은 기회확보에, 빈민의 보호보다 경제조직과 정치구조에서의 개혁을 위한 활동을 뜻한다.
교회의 정치문제에 대한 사회적인활동이란 측면에서는 그리스도인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보고 싶고 교회단체는 개교회적인 차원이 아니라 교회 연합적인 차원에서 거대한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정책이나 윤리적인 문제에 관련된 것은 사회정의와 하나님의 공의적인 관계에서 교회의 입장을 제시하는 행위를 가져야 한다고 본다.
지금까지 정부가 이용하기 위해 설정했던 기구들 가운데 종교인 대표들로서 원로목사들의 개인적인 참여가 소극적으로 이루어졌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정부와 교회와의 대화창구로서 공식적인 전권대사의 파견이 교회부터 정부로 설정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교회의 신앙 속에는 하나님나라와 한국사회는 분리된 두 영역으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회적인 책임에 있어서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두 영역이 구분되면서도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하나님의 주권 영역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될 때에 한국교회는 초대교회처럼 민족과 한국사회를 향하여 복음의 빛을 비출 수 있게 될 것으로 본다. 한국사회는 하나님나라의 실현의 장으로써 여러 가지 사회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과거처럼 보수주의적인 입장의 교회들은 인간 영혼구원에만 관심을 가지고 반면에 자유주의적인 교회들은 오히려 인간구원의 의미보다는 사회구원의 과제만을 전제함으로써 하나님나라의 주객전도 현상을 보인다면 여전히 두 이데올로기적인 대립과 갈등으로 인하여 한국사회를 향한 복음전도와 교회의 부흥은 그 미래가 불투명해 질뿐이라고 본다. 즉 보수적인 교회들은 하나님나라와 세상나라를 분리하는 근본주의적인 신학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며 자유주의 교회들은 특히 민중신학에서 오히려 사회구원이 곧 하나님나라의 일로 동일시하는데서 하나님나라의 실현으로써 한국기독교는 사회적인 혼란 못지않게 그의 신학적 입장이 혼돈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개혁신학의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바른 이해를 통하여 한국사회의 관계에서 볼 때 일반은총의 영역으로 보고 사회문제의 해결에 기여함으로써 일반은총의 사건을 통하여 특별은총의 사건인 그리스도의 통치까지 이르게 하는 선교적인 영향력에 대해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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