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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강 기독교교육을 기초한 목회관 확립이 요청되고 있는 한국교회

신구약성서연구/기독교교육학

by James S. S. Jung 2009. 2. 12.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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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강 기독교교육을 기초한 목회관 확립이 요청되고 있는 한국교회



신학은 이론과 실제사이의 긴장관계는 바로 교회를 중심한 목회사역의 실제에서 경험하게 되는데 이러한 실제를 위하여 신학연구가 필요하며 특별히 실천신학은 실제(Praxis)를 위한 또 하나의 실제이 이론(Theorie der Praxis)으로 그 학문적 독자성과 역할과 사명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에 오늘날 그리스도의 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목회사역은 바로 실천신학에서 다루는 학문적 연구의 재료를 제공하는 근본적인 장이 되는 것이며 동시에 신학연구를 위한 원천적인 장이 된다고 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실천신학의 학문적인연구는 오래전부터 교회의 교육적 기능과 그 역할이 막중함을 인정하였을 뿐 아니라 목회사역 자체가 바로 기독교교육 또는 교회교육으로 이해될 만큼 목회사역에 있어서 교육의 역할이 날로 커져가고 있다.

1. 실천신학 안에서 목회사역의 신학적인 위치
1) 실천신학의 연구방향과 신학적 위치
현재 구라파신학의 동향은 실천신학의 방향에서 그 학문적 전성기를 이루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동안 신학적 동향을 신학사적(神學史的)인 입장에서 이해해 볼 때 교리(Dogma)를 중심으로 하는 조직신학(組織神學)이 신학의 왕자로서 역할을 담당하여 그 신학의 전성기를 이루던 시대는 지나고 역사신학의 새로운 연구와 더불어 정당한 신학의 학문적방법론의 전제로서 역사비평적인 신학(Historisch-kritisch Theologie)이 개발되었으며 이러한 신학적 전제는 다만 신학연구의 방법론으로 받아들여 20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성서신학의 그 학문적 발전의 결정을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 구라파의 신학계에서는 실천신학이란 교회를 중심으로 목회현장의 실제를 다루는 정도의 이론이며 그것이 무슨 독자적인 학문적 이론을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지는 않았다. 그러나 구라파 신학계는 지난 60년대부터 실천신학의 학문적 연구를 집중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신학계에 절대적인 필요존재로서 그 학문적인 위치를 확고히 하였다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실천신학의 학문적 중요성을 다루었던 사람은 19세기 베르린대학의 신학자 F. E. D Schleiermacher(1768~1834)이다. 그는 이론과 실제의 관계에서 그의 유명한 '신학연구를 위한 안내서'란 책에서 신학의 기본연구 학과목을 세부분으로 나누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철학신학(Philosophische Theologie), 둘째, 역사신학(Historische Theologie), 셋째, 실천신학(Praktische Theologie)등이다. 철학신학은 나무의 뿌리로 교회를 중심으로 한 조직신학의 내용으로 기독교의 사상적 뿌리로 보고 있다. 역사신학은 나무의 원둥치 원가지에 비유했으며(교회사, 성서신구약이 이에 속함), 실천신학은 나무의 번창한 숲과 비유하는데 이것을 신학의 왕관(Kroneder Theologie)이라고 불렀다.

2) 한국교회에 시대적으로 요청되는 목회자상
현대신학교육을 점검해 본다면 목사후보생들로 하여금 목회현장에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정확한 분석과 창의성 있는 신학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과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복적인 경험만으로 기존교회와 동일한 또 다른 교회만을 설립하게 하는 일들이 반복되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신학교육체제는 목회자로서 교회현장의 목회경험을 중심으로 그것을 바르게 분석하고 창의적인 신학연구를 통하여 새로운 목회자상과 새로운 교회를 세울 수 있도록 돕는 교육과정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새 시대 새로운 목회자를 통하여 그 시대를 이끌어갈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신학교육과정이 되었으면 한다.

2. 목회사역과 기독교교육의 관계
1) 아브라함 카이퍼의 실천신학의 학문적인 범위설정
화란의 신학자 아브라함 카이퍼의 실천신학의 학문적 범위설정의 이론에서 그는 교육적인과목, 다스림의 과목, 봉사적인 과목, 평신도적인 과목 등 4부분으로 나누고 있다. 교육과목의 내용은 설교학, 교리문답, 예배학, 전도 및 선교 등이며 이것은 목회사역에서 가르침의 직무 즉 교회의 교육적인 사명이 얼마나 크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교회는 그 출발부터 가르치는 교육적인 사명과 함께 시작되었다(마 28:19-20, 행 2:42). 이것은 원천적으로 복음전파라는 말로 더 잘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목회의 실제적인 상황에서는 모든 것이 교육으로 통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중심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로서 묵자와 양은 교회의 현장에서 만나는 것이다.

2) 교회교육에 대한 새로운 인식
실제로 우리는 신학교육이나 목회사역에서 기독교교육하면 주일학교만을 생각하게 되고 그 대상이 어린이나 청소년만을 교육하는 행위로 제한 시켜 말할 때가 있다고 본다. 일반교육학에서도 평생교육론이 거론된 지 오래이다. 오늘날 교육은 성장세대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기성세대에도 교육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며 인간의 삶 자체가 교육과 불가분리의 관계 속에 놓여 있다.

3) 목회의 특징으로써 교육
목회사역의 독특성은 신학적으로는 하나님나라의 백성의 양육 즉 예수그리스도를 주로 믿는 하나님께로부터 선택받은 백성을 양육하는 일이다. 따라서 목회의 중심은 새로이 부름 받은 주의 백성을 찾는 전도의 일에서부터 신앙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의 양육과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도록 삶을 지도하는 삶의 교육전부가 포함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중심으로 가르치는 일을 행하는 것이다.

4) 교육과의 관계에서 본 목회의 중요성
목회자는 목회를 교육적인 관점에서 이해하는 일이 필요하다. 설교 역시 교육적인 관점에서 이해되어야하며 예배와 상담, 성경공부 역시 교육적인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목회는 교육적인 관점에서 수정되고 발전되어야 한다. 목회를 교육적인 관점에서 이해할 때에 비로소 목회계획이란 것이 세워질 수 있다. 여기에서 교육과정 즉 커리큘럼의 문제가 목회계획에 나타날 수 있다. 더욱 더 목회를 교육적인 관점에서 보아야할 중요한 이유는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성숙과 양육에 있다고 본다. 궁극적으로 교육의 목표는 목회현장에서 교육을 통하여 성숙되어지는 그리스도인의 변화는 곧 그들의 인격적인 삶을 통하여 구원을 완성해 나아가게 할 것이다. 즉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성장해 나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 양육하는 일이 곧 목회사역이 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목회의 과제는 그리스도인의 중생과 성화사이의 작업이 곧 그 중심을 이룬다고 볼 수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구원은 받았으나 그 완성은 곧 주님의 재림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5) 친밀한 목회와 교육의 관계
목회가 목회다워지려면 그 지혜를 교육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교육은 목회자 자신을 먼저 배우게 하고 그 후에 양들을 양육시키는 그 자체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교육과 목회는 동전의 양면처럼 동일한 사건의 두 표현에 불과한 것이다. 복음이 인간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인 것처럼 복음은 교육이라는 수단을 통하여 인간의 구체적인 행동의 변화를 일으킬 뿐만 아니라 목회사역 전체를 변화시켜 목회다운 목회를 가능케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교회의 교육적인 목회관에 따라 사역되는 목회가 되도록 목회관에 대한 시각을 새롭게 전환시켜야할 것이다.

3. 복음전도와 선교의 개념에 대한 혼돈
1) 복음전도와 선교의 개념이해
민족복음화란 대 주제아래 이끌어진 60년대 중반부터 나타난 대중전도 집회와 전도운동의 결과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교회의 전도와 선교의 사명이 얼마나 크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시켜주었고 이 때문에 그리스도인 모두가 자기 스스로를 복음전파자요, 선교사로 인식할 만큼 선교와 전도는 대중화 되었고 보편화 되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실제로 한국교회 안에는 선교와 전도에 대한 수많은 오해와 혼란을 거듭하고 있는 현실이다.

2) 교회의 목회사역과 선교에 대한 이해
선교는 기독교 지상과제이지만 목회사역은 선교 그 자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선교란 목회사역에서 볼 때 목회사역내면의 모든 기능들의 상호협력을 통하여 이루어지게 될 목표이기도 하다. 교회는 선교를 위하여 있지만 교회는 선교 그 자체가 아니다. 선교는 교회의 기능 중에 하나이며 그런 입장에서 우리는 현대기독교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하나님의 선교이론의 긍정적인 면을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그 이론의 완전수용을 거절하고 오직 주님이 세우신 그의 몸을 중심으로 한 교회의 선교(Missio ekklesiae)를 택하게 된다.

4. 교회관에 대한 혼란
1) 교회의 개념이해
한국교회의 교회(敎會)란 말은 영어나 독일 말에서처럼 동일한 개념으로 표현되었다고 볼 수 없다(영어 - Church, 독일어 - Kirche). 신학적으로 교회(Kirche)는 예수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요, 몸인 것이다(엡 5:23, 4:15-16).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그 몸에 연합된 지체들이다.
2) 선교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 교회분리현상의 원인
교회의 신학적인 표현의 문제점과 함께 선교적인 차원의 목회관은 선교와 전도의 대의명분 때문에 이미 세워진 기존교회의 비극적인 분리가 쉽게 이루어지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본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개척교회의 현상을 보면 참다운 전도를 통하여 설립되거나 개척되어진 것이 아니라 기존교회에 목회자와 양들 사이의 갈등관계에서 파생된 개척교회의 양태가 더 많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5. 교회의 2원적 구조의 갈등
1) 목회자와 평신도 사이의 2원적 갈등현상
선교적인 차원의 목회관은 한국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선교와 전도의 사명이 모두 것으로 인식 시키는 데는 성공했으나 실제로 목회현장으로 인도된 그리스도인들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일에 성직자와 평신도 사이를 완전히 나누어 버리는 2원적 갈등현상은 구조화해 버렸다고 볼 수 있다. 선교적인 차원의 목회관은 계속적인 전도운동을 통하여 수많은 교회가 세워지게 할 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이 교회로 찾아와 대형교회를 이루는 데까지 그 성과를 나타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결과는 목회현장에서 실제로 많은 문제를 야기 시키고 있는데 특별히 교인이 많아짐에 따라 목회적인 카리스마가 필요하게 됨은 물론, 순탄한 목양을 위해 목회자의 권위를 인위적인 방법으로 높여가고 있다고 본다. 여기에서 파생되는 문제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목사의 직분은 구약의 제사장과의 관계에서 절대화시키는 문제이며, 다른 하나는 카리스마적인 지도자의 출현이다. 이에 따라 지금이야말로 종교개혁자 루터가 그처럼 강조했던 '만인제사장론'(Allgemeines Priestertum)에 대한 재음미가 요청된다고 할 것이다.

2) 성직자와 평신도 위치에 대한 새로운 정립
제사장 권한을 한국목회자의 고유권한으로 해석하는 문제는 목회자의 축도권과 영적축복권에 대한 새로운 신학적인 규명이 요구되는 때이다. 이에 따라 교회 내의 성직자와 평신도 위치가 새롭게 정립되어야 할 것이다. 목사의 명칭에 있어서도 목회현장에서 사역하는 자를 목회자 또는 목사라 불러야 할 것이다. 목사직의 기원을 제사장직에서 찾는 것은 신학적으로 그 지지를 받기에는 희박하다고 본다. 목사직의 권위는 오히려 사도권의 계승관계에서 찾아야 하며 자칭 사도라는 의미보다는 목회자가 복음을 위하여 헌신적인 삶, 희생적인 봉사, 사랑의 행위에서 인정을 받아야 할 것으로 본다.

3) 목자와 양의 관계
목자와 양의 관계는 무조건적인 맹종이나 군림의 관계가 되기보다는 피차 그리스도 안에서 인격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한 희생과 섬김의 본을 보이는 관계로 발전시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오늘날 비쳐지고 있는 대접받는 종의 모습이 아닌, 고난과 희생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위한 순종과 봉사의 관계를 이루어야 한다고 본다(요 13:12-15). 이러한 목자와 양의 관계가 새롭게 정립되어야 한다고 본다.

6. 설교와 성경교육의 문제성
1) 설교 의존적인 신앙인
한국교회의 예배는 극히 설교 의존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 예배에 있어서 설교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고 본다. 실제로 설교의 비중은 목회현장에서 실제로 80% 이상을 차지하는 한다고 본다. 이 때문에 설교는 항상 은혜와 감동여하에 따라 평가되고 있다. 이러한 설교에 편중된 목회현장은 아직도 한국교회가 안정되지 못하는 원인 중 하나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설교중심적인 목회사역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을 설교의존적인 신앙인으로 살게 만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실제로 그리스도들이 주일날 예배를 드린 다기 보다는 목회자의 설교를 듣기 위한 예배를 준비하고 있다고 본다. 실제로 얻는 감동 때문에 수원에서, 부산에서, 서울 외곽지역에서 서울의 몇몇 교회의 유능한 목회자의 설교를 듣기 위해 집중되고 있다고 본다.

2)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수단들에 대한 이해
설교가 하나님께로부터 은혜 받는 수단 중 가장 첫째 되는 것이라는 점에서는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오늘날 대다수 목회자들이 은혜 받는 수단으로써 설교에 치중하고 있는 경향이 강하다는데 문제가 있다고 본다. 신학적으로 규명된 은혜의 방편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말씀(설교), 성례(성찬과 세례)가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은혜의 수단으로써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일과 성경을 배우는 일 그리고 기도하는 일까지 은혜를 받는 수단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실제로 설교에 치중된 목회는 자연스럽게 성례를 소홀히 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성찬은 대부분 교회에서 일 년 중 1~2차례에 갖는 것으로 알고 있다. 종교개혁자 칼빈도 성찬을 나누도록 권고하고 있다.
세례에 있어서도 영적세례만을 중시하는 경향으로 물로 세례 받는 것은 마치 세례요한의 물세례처럼 여겨 가볍게 여기는 경향을 띠고 있다. 이것은 비성서적인 무지에서 온 것으로 본다. 이러한 현상의 부정적인 영향은 곧 성령운동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성령운동의 경험주의적인 것과 실증주의적인 사상에 의존하는 신학적인 부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성경공부에 대한 인식도 실제로 문제가 심각하다. 성경공부는 한국교회 내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 이유는 성경공부를 하지 않고는 구원의 진리를 깨달을 수 없다는 인식이다. 성경공부를 지나치게 강조하므로 말미암아 성경을 공부하는 그 자체가 그리스도의 신앙과 삶인 것처럼 인식되어졌다는 점이다. 성경을 배우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성경은 목적을 향한 수단이요, 성경을 공부하거나 배우는 자가 도달해야할 목표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있는 것이다. 성경을 배우는 과정에서 그 성경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사람의 주관적인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위험도 내재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7. 구원관에 대한 이해
1) 보수주의신학의 입장
기독교 구원이란 미래적인 관점에서의 이해와 현재적인 관점에서의 이해가 필요하다. 보수주의 입장에서는 미래적인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근본주의나 세대주의신학의 입장에서 강하게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지금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다가올 종말의 심판을 준비함과 그 미래적인 천국에 가기 위한 자격획득 내지 입장권 구입에 비교되고 있다고 본다.

2) 자유주의신학의 입장
기독교의 구원과 천국을 현재적인 관계로만 보기 때문에 극단적으로는 이 땅에 이루어진 유토피아적인 하나님나라의 실현을 위해 현실사회와 정치참여에 열성을 다하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것은 대체로 자유주의적인 입장의 신학이 보는 구원과 종말론인 것이다.
보수주의는 극단적으로 비현실주의적인 입장을 취하며 이 세상을 죄악시한다. 그리고 현실에 집착하며 현실의 인간적 문제들에 최대의 인간중심적인 발상을 발휘한다고 볼 수 있다.

3) 개혁주의신학의 입장
기독교 구원이란 현재적인 것이면서 동시에 미래적인 양면성을 다 수용하는 입장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시작되는 하나님나라는 모든 만민에게 전파되고 확산되며 발전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이 땅에 이루어질 유토피아적인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미래적인 하나님나라와 주님의 재림의 때를 바라며 현재적으로 이 땅의 삶을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하나님나라가 이 땅에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시작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의 내주하심이요 믿는 자가 그의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하며 살기 때문에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이 영적인 관계에서 이미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뜻한다. 신앙인이 됐다거나 믿음을 갖게 됐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적인 사건이요, 하나님의 영의 임재사건이다(엡 2:8). 그리고 약속된 미래적인 종말의 소망 때문에 결코 현실을 비관적으로 보거나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이 땅에서 일하시며 이 땅 위에 무엇인가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분별하며 그 뜻을 좇아 순종하며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본분인 것이라고 본다.

전통적으로 선배목회자가 후배에게 가르치는 목회철학은 언제나 3가지를 강조하는 내용이었다고 본다. 첫째는 부임과 작별설교준비, 둘째는 이사 갈 준비, 셋째는 죽을 준비에 관한 것이었다고 본다. 이러한 목회철학은 선교적인 차원에서 주어진 목회철학이라고 본다. 이제 한국교회는 파종하는 일에 집중한 나머지 수적인 성장은 이루었지만 그 파종된 것이 알곡으로 무르익을 때까지 양육하는 목회철학은 부재했었다고 본다. 파종하여 얻는 그 싹들을 무르익을 수 있도록 양육하고 가꾸어야 한다고 본다(마 9:36-38). 이러한 관점에서 그리스도의 성장과정을 위한 목회적인 계획과 실천이 필요하며 이러한 목회계획을 성취하기 위하여 교회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교회교육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목회철학에 따른 목회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현장에서 그들을 양육하고 교육하는 것이 목회일 것이다. 따라서 목회신학은 곧 삶의 신학이라 할 수 있다. 삶은 곧 생명의 시작을 말한다. 기독교의 구원은 곧 새로운 삶을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 곧 목회사역이다. 이러한 일을 계획하는 것이 곧 목회신학이며 이 목회신학은 곧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삶을 위하여 목회자가 계획하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요구되는 것이 곧 교육목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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