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차 나타날 하나님의 영광, 롬 8:18-30
크리스천이 당하는 현세의 고난은 어떤 것인가? 과연 그 고난은 크리스천의 궁극적인 구원에 방해가 될 수 있는가? 아니라면 그 고난은 크리스천에게 어떤 것인가? 크리스천이 마땅히 현세에 당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고난으로 고통당하는 신자를 돌보지 않으시는가? 과연 그 고난은 신자에게 유익한 것인가? 다른 피조물들 역시 함께 고통당하고 있다고 하는데 과연 그러한 것인가?
1. 현세의 고난에 대한 신자의 태도
현세에서 당하게 되는 고난은 신자의 삶에 많은 고통과 괴로움을 안겨다 주고 있다. 그것은 현세적인 어떤 가치와 목적에 이를 수 없게 하는 것이 될 수도 있고 건강이나 어떤 신분적인 것이 돌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현세적인 삶에 필요한 것이지 궁극적으로 하나님나라에서 필요한 것들은 아니다. 육신의 삶을 위하여 현세에서만 필요한 것으로써 우리가 하나님나라에서 필요한 것들은 아니다.
현세에서 우리가 고대하며 기다리는 것은 무엇인가? 세상에서 필요한 것인가? 아니면 궁극적으로 우리가 소망하는 것인가? 우리가 소망가운데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린다면 현세적인 고난은 그 소망하는 것과 비교해 볼 때 비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수준의 것이 분명하다. 피조물들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영광을 입고 나타날 그 때를 고대하고 있다고 말한다.
2. 피조물들이 허무한 것에 굴복하는 이유
인간은 허무한 일을 추구하기에 급급하다. 자연은 훼손되어 재앙을 가져다주고 있다. 인류의 재앙은 닥쳐오는데 그에 대한 대응책 보다는 인간의 연약하고 유한한 능력을 보일 뿐이다. 자연환경 보존을 무시하고 난 개발로 인한 환경훼손은 인간에게 고스란히 해를 가져다주고 있다. 바다 매립, 녹지 훼손, 댐 공사로 인한 생태계 교란 등은 인간이 사는 환경에 큰 해를 가져다주는 일이다. 인간을 위해 만든 자연 훼손은 고스란히 인간에게 피해를 주는 시설물들이 되고 있다. 인간의 욕심은 하나님과의 관계, 사람들과의 관계, 자연과의 관계에 부조화를 형성하게 만든다. 얼마나 더 욕심을 부릴 것인가? 모든 피조물들은 이러한 인간의 허무한 역사 앞에 굴복하는 이유는 그들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순종하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 그렇게 하도록 하셨기 때문이다.
3. 성령은 택하신 하나님의 자녀들을 돕고 계신다.
택함을 입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령께서 돕고 계심을 잊어서는 안 된다. 비록 현세에서 기대할 수 있는 희망이 사라진다할지라도 우리에게는 궁극적인 하나님나라가 약속되어 있다. 그러나 현세에 사는 날 동안에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곧 육체를 욕심이 아닌 그 육체 안에 있는 하나님의 양자의 영을 통하여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행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아직은 우리의 목숨이 끝나는 날까지는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옛 육신을 입고 기다려야하는 기간이 있는데 이 기간은 세상에 살아 있는 기간을 말한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세상에 있는 동안 우리의 연약함을 돕고 계신다. 우리가 행할 일을 행할 수 있도록 돕고 계시는 것이다. 현세에 남겨진 일들을 행할 수 있도록 도우시는 성령의 능력을 따라 우리가 행할 일들을 담대히 행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한다. 현세에서 우리가 믿음생활 하면서 받는 그 고난은 장차 우리가 입게 될 그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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