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계략적이었던 바리새인들의 질문
율법은 이혼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했는지를 예수께 물었다. 이것은 그들이 모르고 묻는 질문이 아니라 예수께 올무를 씌우기 위하여 묻는 질문이었다. 그들은 세례요한을 죽인 헤롯 안디바를 알고 있었다. 예수께서도 세례요한처럼 위기에 빠지기를 기대하고 묻는 질문이었던 것이다.
그들의 질문은 이혼에 대한 율법해석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세례요한이 헤롯 안디바의 부당한 결혼을 책망했던 것과 관련지은 질문이었던 것이다. 이들의 질문은 사람을 곤혹스럽게 할 정도가 아니라 사람을 죽는데 까지 나아가도록 하는 사악한 질문이었던 것이다.
2. 예수님의 지혜
세례요한이 처형당했던 헤롯 안디바가 있는 베뢰아를 통과하고 있을 때 질문을 받은 것이다. 이 말은 곧 예수께서 죽음의 위기를 맞게 하기 위한 계략이라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들의 악한 의도의 질문을 알고 계셨다. 이들을 가장 질타하셨던 이유도 이러한 배경에서일 수 있다. 이들은 외식하는 자들이요, 겉과 속이 다른 자들이었다.
예수님은 반문하셨다. "모세가 어떻게 너희에게 명하였느냐"라고 되물었던 것이다. 이들은 예수께서 올무에 빠지기를 원했지만 예수께서는 지혜롭게 답하셨다. 그들의 의도에 휘말리지 않으셨고 도리어 그들의 의도를 드러내신 것이다.
3. 한 몸의 원리
결혼 규범(창 1:27, 2:24)과 모세의 이혼증서(마 19:9)를 구별할 수 있어야 했다. 결혼 규범은 분명히 명령이시다. 그러나 이혼 증서에 대한 것은 하나님이 어떤 경우에 허용하신 것을 말한다. 명령과 허용은 분명히 차이가 있다. 명령은 안 되는 것이며 허용은 자신의 선태에 의한 것이다. 자신의 선택의 결과는 곧 자신의 책임이 되는 것이다. 명령은 그것을 어긴 자는 하나님께로부터 책망과 벌을 받는 것이며 지키는 자에게 칭찬과 상을 받게 될 것이다.
결혼 규범과 사람들의 실존적인 환경에 대하여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과 허용하신 것을 구별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지혜가 필요하다. 허용되었다할지라도 회개하는 자에게 회복의 기회를 주어야할 의무도 역시 스스로 결정하도록 허용하신 것이다. 만일 허용된 규정대로 회개하는 자를 용서하지 않고 이행 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스스로 결정하고 행하도록 허용하신 원리 안에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을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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