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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3. 3~12 마음의 생각을 나타내는 혀

말씀하시는 성령

by James S. S. Jung 2008. 10. 18.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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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3. 3~12 마음의 생각을 나타내는 혀

 

인간이 살면서 인간의 마음을 감동시키며, 가장 위대한 명언을 남기기도 하는 신체에서 그리 크지 않은 작은 기관이면서도 많은 영향력을 지닌 것이 곧 혀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 혀의 사용을 통하여 행하는 모든 일들 가운데 가장 큰 책임을 감당해야할 신분이 있는데 그가 곧 선생의 직분입니다. 과연 사람이 실수하지 않을 수 있는가? 생각할 그 이상의 것을 생각하지 않는 훈련이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이 곧 선생일 것입니다.

 

1. 위험한 혀의 사용에 대한 권고

우리는 이 혀의 위험성을 알기 때문에 때로는 재갈을 물려야할 때가 있으며, 말을 순종케 하려고 그 입에 재갈을 먹여 온몸을 붙잡아 두어야만 하는 경우가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바다에 떠다니는 배 역시 광풍에 밀려가는 그 큰 배를 움직이는 것은 아주 작은 키로 사공이 조작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의 방대한 지식과 삶의 경험을 나누며, 복잡한 인간의 의사소통과 정보교환을 위하여 사용되는 것은 그 큰 몸이 아니라 그 몸의 작은 지체인 혀를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산불이 날 때에도 그 불씨는 아주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혀는 불과 같은 위험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혀는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며, 생의 바퀴를 불사르기도 합니다. 그 불사름이 지옥불에 던질 수도 있는 위험한 신체 기관이기도 합니다. 선생이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오늘날 목사가 되는 일을 쉽게 여기고 대충 신학 공부하여 안수 받는 사례들을 접할 수 있는데, 과연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 일을 감당하고 있는지를 되묻고 싶습니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그리스도를 만나 회심한 이후, 약 14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철저히 훈련받은 뒤에 쓰임 받은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2. 길들일 수 없는 혀

야고보 사도는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 그리고 벌레와 바다의 생물들은 다 길들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혀는 길들일 수 없을 것임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 혀는 쉬지 않는 악이며, 죽이는 독이 가득하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혀로 하나님아버지를 찬송하면서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을 저주한다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있습니다. 인간이 짐승을 길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혀를 길들을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이 더 잘 알도 있을 것입니다. 때문에 인간은 오랜 기간의 수양과 훈련과 교육이 필요로 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신앙과 삶에 대하여 쉽게 여기던 수많은 생각과 행동들을 반성하고 서로 비난하며 다투던 일들을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자신을 낮추며, 자신의 혀를 재갈 먹이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형제들을 섬기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 위하여 부단한 노력과 자신의 쳐 복종시키던 바울처럼 진리의 말씀 앞에 복종하는 삶의 길을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3. 마음의 생각을 표현하는 혀

혀는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를 내는 기관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것은 마땅한 일이 아니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물과 쓴물을 내겠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열매를 맺겠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을 없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짠물이 단물을 낼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마음속에 있는 지식과 감정과 의지대로 그 혀는 사용될 뿐입니다. 인간의 마음속에 심겨진 것을 나타낼 뿐입니다. 혀는 그 마음을 속일 수 없습니다. 자신을 속여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심령 속에 있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혀를 재갈 먹일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찢어야만 합니다. 혀를 핑계 삼아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지 않는 자나, 모르면서 아는 척 하는 자나, 믿음이 없으면서도 믿는 자들을 인도하는 어리석은 자들은 길들일 수 없는 그 혀로 더 이상 죄를 지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정직해야 합니다. 다윗은 윤리 도덕적 측면에서는 그리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없었지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마음을 속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제사가 아니라 순종하는 자들입니다. 그의 외모나 능력이나 인생의 성공과 자랑이 아니라 그의 마음속에 진실을 찾고 계십니다. 무성한 무화과나무가 저주 받았던 일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것은 아직 6월이 되지 않았는데도 무화과의 열매가 맺은 것처럼, 아직 4월인데도 6월의 무화과나무처럼 무성한 잎사귀를 자랑하며, 열매 맺은 무화과나무 행세를 했기 때문에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이것은 아직도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인 것처럼 착각에 빠져 있는 외식하는 유대인들을 상징하고 있었던 교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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