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인의 후손들 창 4.16~24
죄인의 역사는 어떻게 전개 되는가? 우리는 본문에서 죄를 지은 후손들의 삶은 어떠한 지를 살펴볼 수 있다고 본다. 그러한 모습은 오늘날 우리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 우리는 그러한 일들을 살펴보아야 한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인간의 죄를 빼고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이야기 거리가 없을 것이다. 인간이 얽혀 살아가는 가운데 그들이 짓는 죄와 슬픔과 고난들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1. 가인이 하나님의 품을 떠나 유리하는 생활을 시작했다.
16절, “가인이 여호와의 앞을 떠나 나가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였더니”
‘놋’이란 헤매다. 유리하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가인은 하나님을 떠나 헤매며 유리하는 인생이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 놋에 대한 분명한 해석은 불가능하다. 단지 그가 거하는 땅은 하나님과 동행할 수 없는 땅임이 분명하다.
2.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인간의 죄악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17절~20절, “아내와 동침하니 그가 잉태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였더라. 에녹이 이랏을 낳았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았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았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라멕이 두 아내를 취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며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하여 육축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가인은 가정을 이루어 아들을 낳았는데 그 첫 아들은 에녹이었다. 에녹은 창 5.1의 에녹과 이름은 같지만 같은 사람은 아니다.
에녹을 낳은 후 그곳을 에녹성이라 붙였는데 이것은 다음 성구에서 인간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저희의 속생각에 그 집이 영영히 있고 그 거처가 대대에 미치리라 하여 그 전지를 자기 이름을 칭하도다.”(시 49:11)
라멕이 두 아내를 둠으로 가정의 윤리는 혼란스럽게 된 것이다. 이것이 곧 가인이 범죄 한 이후에 일어난 가정문제의 혼란이었다. 두 아내를 두게 됨으로 인하여 일어날 일들을 심각하게 생각해야만 한다.
“어떤 사람이 두 아내를 두었는데 하나는 사랑을 받고 하나는 미움을 받다가”(신 21:15)
3. 살인죄를 범한 후손들에게 유전되고 있는 죄의 모습들을 놓쳐서는 안 된다.
23~24절,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창상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라멕은 자신의 부인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하고 있지만 이것은 죄를 즐기는 자들의 특징이다. 어떤 윤리나 도덕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을 오늘날에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이 가인을 죽이는 자들에게 벌을 7배를 내리시겠다는 말을 그는 자기를 죽이는 자는 77배나 받게 될 것을 호언장담하고 있는 꼴을 보아야 한다. 신원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 있다. 라멕의 말은 분명히 옳다 하지만 라멕은 그 말을 할 자격이 없는 자이다. 그러면서도 가인을 빗대어 자신을 드러내는 교묘한 자기자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쉬와 부끄러움에 대한 옹호일지 모르나 그는 분명 그러한 말을 할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라멕은 다음 성구를 통하여 자신도 살인자임을 주장하는 말로 보여 진다. 그는 살인자일지라도 가인이 하나님의 보호를 받았던 것처럼 자신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기를 기대하는 말과 같은데 라멕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적이 없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나의 창상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
인간의 노력으로 인류의 죄는 과연 해결될 수 없는가? 물론 그렇다고 말한다면 그는 운명주의자라고 말할 것이다. 과학의 문명과 인간의 지식은 인간 스스로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한다. 그것은 곧 인간의 죄와 그 죄로부터 확산되어지는 인간의 죄보다는 지금의 모습 그대로 영원할 수 없는가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인간의 시도 중 하나가 ‘냉동 인간’이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유전자 조작으로 인하여 ‘복제인간’에 대한 연구가 시도된다. 문제는 ‘영혼’에 대한 문제만 남아 있는 셈이다. 과연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인간이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영생만을 추구하는 인간의 노력이 과연 선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우리는 이러한 질문과 함께 또 한 해를 보내야할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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